조영남이 한국에 알려 준 것

모든 작가가 혼자 작업을 하는 건 아니에요

by 구찬우

2016년 조영남의 대작사건은 2020년 대법원까지 가서야 마무리되었다. 결론은 '무죄'였다. 대부분 기억하실 테지만, 사건을 요약하면 조영남 작가가 송화백이라는 사람에게 한 점당 10만 원을 주고, 전달받은 그림에 서명만 해서 판매를 해왔던 것이 밝혀졌는데, 16년 당시 검찰은 조영남 작가에게 사기의 기망행위가 있다고 했었다. 어쩌면 검찰은 미술계의 관행에 대한 아무런 인지가 없었던 게 아닌가 판단된다. 어쨌든 2020년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으며, 그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미술계의 관행이 알려졌다고 생각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호감무죄 비호감유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시를 즐기는 사람들과, 초보 컬렉터들도 작가의 작업과정과 도제관계까지는 잘 알지 못한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는 미술작가라는 아티스트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1인 크리에이터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거래가 되는 것은 한 점의 작품이라도 작가는 전시로 작품을 알리는 사람이다. 전시는 작가 혼자서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 아니다. (물론 너무 무능력한 갤러리를 만나면 작가 혼자서 다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안84가 지금은 웹툰을 혼자서 그리지 않는 것처럼 작가도 변화의 시점이 올 수 있다. (물론 한국은 미술계의 어시스턴트 관행을 쉬쉬하고 있었고, 그래서 조영남 사건이 더욱 화제가 된 것 같다)


작가 A는 신진작가였다. 젊은 나이였지만 그의 그림과 작품관은 이미 완성되어 있어 보였다. 국내에서 꽤나 인지도가 형성되었고 많은 작품들이 컬렉팅 되었다. 그리고 해외 컬렉터의 구매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해외 X갤러리가 A작가에게 전속 계약을 요청하였다. A작가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X갤러리는 컬렉터들 사이에서 이름만 대면 그래도 대부분 알만한 작가까지 소속된 갤러리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온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계약금 또한 매력적이었다. X갤러리는 A작가에게 매월 300호의 납품을 계약서에 명시하였다. 300호는 대충 3미터*2미터의 대형 사이즈이다. 300호의 납품은 100호 3점 혹은 50호 6점으로 납품하여도 무관하다. (해외 갤러리지만 편의상 ‘호’로 설명 중) 10호로 작업을 하려면 1달에 무려 30점, 즉 매일 1 작품을 쉬지 않고 그려내야 하는 조건이다. 작가는 힘든 조건이라는 것을 알지만 너무 큰 계약금과 매달 지급을 약속한 계약을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도상은 50호로 구상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300호라는 월 납기 목표에 맞추려면 정방형 50호 (약 90센티미터) 6점을 목표로 했다. 그렇게 첫 달은 약 3주 만에 300호를 완수하였고 앞으로도 무리 없이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기는 당장 다음 달부터 시작하였다. 예전에는 작품 구상을 위한 에스키스나 드로잉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작가는 납기라는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째 달도 300호를 완성하였다. X갤러리의 고객이었던 컬렉터들은 갤러리가 소개하는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기꺼이 컬렉팅 해주었고 그들의 소셜미디어에도 공개해 주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 작가의 이름이 글로벌 영컬렉터들에게 소개가 되고 있었다. 작가는 매월 통장에 입금되는 금액과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을 언급하는 피드량이 늘어나자 큰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어느샌가 더 이상 작품을 그려낼 도상은 완전히 고갈되고 말았다. 그렇게 2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작가는 단 한 점의 작품도 그려내지 못했다. 남은 시간 작가는 100호 3점을 목표로 하고 그려냈다. 도상은 작가가 왜 100호의 캔버스를 선택해야 했는지에 대한 명분이 없이 50호와 동일했다. 하지만 작가는 납기를 해야 했고 쫓기고 있었다. 그때 A작가는 친한 기획자와의 만남에서 충고를 듣게 된다.


"작가님, 더 이상 이렇게는 힘들어 보이세요. 어시를 쓰세요."


기획자는 진심으로 충고를 한 것이었다. A작가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시간이 부족했고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언제부턴가 비슷한 그림을 계속 양산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작품의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했고, 컬렉터들의 부정적 평가를 받아들일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작가의 작품이 세계 3대 경매 시장에 처음으로 출품되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갤러리가 보다 3배 정도 되는 레코드가 기록되었다. A작가에 대한 관심은 폭발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작가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기 어려울 정도로 지쳐있었다. A작가는 끝까지 어시를 고용하지 않았다. 이 시장은 좁고 젊은 작가가 어시를 쓴다는 소문은 매우 빠르게 미술계에 퍼지게 될 것이었다.


그의 작품이 세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그때 컬렉터들은 오히려 A작가를 의심하고 있었다. A작가의 작품을 컬렉팅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여기저기서 그 작가의 작품 리스트가 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도 X갤러리로부터 구매제안을 받게 되었다. 최근 들어 그의 작품은 더 이상 새로워 보이지 않았다. 컬렉터는 결국 구매를 망설이다 구매를 하지 않았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X갤러리는 더 이상 A작가를 홍보하지 않기 시작했다. A작가에게는 돈을 쓸시간도 없이 입금된 많은 돈만 남았지만 한때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졌던 컬렉터들이 사라져 버렸다.


X갤러리는 A작가의 척추에 빨대를 꽂고 빨아먹었다. A작가의 그림은 현재 2차 시장에서 당시 갤러리가 이하로 거래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아트페어에서 그의 작품 몇 점을 만날 수 있었다. 국내에서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된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도상의 그림을 두 가지 컬러로 전시되어 있었고, 뭔가 애잔함을 느꼈다. 캔버스에 비해 도상은 작았고 그 사이즈의 캔버스를 선택한 명분도 없었다. 같은 도상이었지만 한 작품은 조색의 결과물이 그의 작품답지 못하다 생각되었다. 아쉽게도 이런 평가는 작가에게 사망선고 같다.


이 이야기는 실제 목격한 A작가의 이야기이다. 우선 X갤러리가 나쁘다는 것에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X갤러리는 감히 국내갤러리가 신진작가에게 해줄 수 없는 큰 경제적 보상을 주긴 했고, 감히 그런 제안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국내 갤러리 중에서 해외 X갤러리와 비슷한 영업을 하는 곳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작가의 생명보다는 물들어 올 때 노 젓자는 식의 영업, 작가의 이미지를 단기간에 소모시켜 버리는 영업형태는 흔하다. 그러다 보니 불과 몇 년 전 미술 호황기 때 거론되었던 신진작가들은 불황이 오면서 대부분 잊히고 있다.


과연 A작가가 어시스턴스를 고용하고 작품의 기획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 더 좋은 결과물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생각에는 결과론적으로는 지금 보다는 좋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작가의 성장 과정에서 어시스턴스를 일찍 고용한 젊은 작가들이 있다. (보통 컬렉팅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은 신진작가를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신진의 기준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메이저 갤러리 전속이 아니며, 아직 경매시장에서 유통되지 않은 대부분의 작가들을 통틀어 말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40대 초반까지의 작가들도 신진으로 표현된다. 40대의 보통 직장인이라면 차장정도는 될 텐데 미술계에서는 아직도 신진 소리를 듣게 되는 너무나 어려운 곳이다) 컬렉터들은 쉬쉬하면서도 오프라인에서는 정보를 나눈다. 'B작가랑 C작가 둘 다 어시 쓰잖아' 이런 표현은 단지 정보 공유의 의미이지 작가에 대한 폄하의 목적이 전혀 없다. B작가는 주목받은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어시를 쓴다는 소문이 있고 나서 부터 작업의 완성도가 급격하게 높아졌었다. 나는 오히려 B작가의 작품에 더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달인 2025년 3월 도쿄 아자부다이힐즈갤러리에서 오프닝 한 토모카츠 마츠야마의 개인전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토모카츠 마츠야마는 사실 개인적으로 관심작가는 아니지만 (물론 그의 작품을 컬렉팅 할 경제적 여유도 없다) VIP/Press 프리오픈날 소셜미디어에 쏟아진 그의 전시 사진을 보고 전시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일반인 대상 전시 첫날 전시를 보러 갔는데, 정말 충격의 시간이었다. 거대한 작품들은 시신경이 소화하지 못할 만큼의 색상을 쏟아냈고 정신이 혼미했다. '인간이 이렇게 미술을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졌다. 나는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토모카츠 마츠야마의 팬이 되었다.


토모카츠 마츠야마는 여러 명의 어시스턴스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있는 모습들을 소셜미디어에 노출하곤 했다. 그들은 혼자서는 도저히 완성할 수 없는 토모카츠 마츠야마의 미학세계를 만들어가는 협력자들이었다. 앞으로도 토모카츠 마츠야마는 지금 보다 더 큰 미학세계를 완성해 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르네상스 때부터 이어온 스튜디오 개념이 앤디워홀에 와서는 팩토리라는 표현까지로 확장되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미술계에서의 도제관계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건 시대착오를 넘어선 무지 그 자체이다.


자, 그러면 다시 조영남으로 돌아가보자. 송화백이 대작에 터치 한 번도 없이 사인만 한 조영남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실 송화백이 조영남 작가 보다 더 페인팅 실력이 뛰어났으니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작가 조영남이 과연 자신의 기준선에 미달한 대작에도 사인을 했을까라고 한다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랬다면 그는 작가가 아니다. 송화백은 조영남 작가가 자신에게 작품에 대한 어떠한 기획이나 가이드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조영남 작가는 아티스트이자 크리에이터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유죄는 아니다. 많은 작가들이 과거의 자신을 넘어서지 못하고 성장을 멈춘 것과 마찬가지 일 수 있다. 조영남은 화투 그림에서 오랜 시간 성장을 멈춘 사람일 뿐이다.


조영남, 그는 무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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