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달구지
어쩌면 내가 유독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미술 관련 콘텐츠를 많이 소비하고 있어서 생긴 오해일지도 모른다. 글들을 읽다 보면 '전공자 입장에서 봤을 땐' 이라던지 '제가 전공자인데' 이런 표현을 왕왕 보게 된다. 이런 표현이 다행히 내가 이 쪽 분야에선 어느 정도 전문성이 있다는 어필의 목적이라면 괜찮은데, 내가 느끼기에는 '일반인과는 다른 전문적 관점'이라는 배타적 목적이 강하게 느껴졌다.
IT산업을 예로 들어보면 새로운 Tech기업에 대한 글에 '컴공 전공자 입장에서 봤을 땐'같은 소릴 한다면 얼마나 웃긴 상황일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계속 변경되는 트럼프의 글로벌 관세 정책의 파급효과를 논할 때, '경제학 전공자 입장에서 봤을 땐'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누가 그런 표현에 공감해 줄까 생각해 본다.
대한민국의 대학진학률은 70% 수준이다. 선진국 50% 수준보다 훨씬 높은 세계 최상위 국가이다. 이런 국가에서 대학교 학사 전공으로 어떤 분야의 전문성과 배타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을까는 공감대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물론 해당 분야에 박사학위가 있다거나, 해당 분야 공신력 있는 기관/업체에서의 근속이 오래되었다면 충분한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신진 작가 발굴에 관심이 많은 컬렉터들이 좋아하는 페어가 있다. 아시아프(asyaaf)인데, 올해 2025년은 8월 12일부터 9월 7일까지 열린다. 아시아프는 asian students & young artists art festival의 약자로 대부분의 참여자가 미술전공 학생이고, 히든 분야까지 포함하면 35세 이하의 젊은 참가자로 알고 있다. 보통 1부/2부 나눠서 진행되니, 기간에 맞춰 2회 방문은 해야 모든 작품을 볼 수 있다. 아시아프는 필수는 아니지만 10만 원 가격의 작품을 전시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때문에 전시 첫날 오픈런을 하는 컬렉터들이 많다. (괜찮은 10만 원 작품은 전시 첫날 오픈과 함께 sold out 된다)
아시아프는 DDP에서, 그리고 몇 년간은 홍익대학교에서, 그리고 작년에는 서울역 서부 옛 국립극단 공간에서 개최되었다. 올해는 옛 서울역인 문화역 서울 284에서 개최된다. 문화역 서울 284는 천고가 매우 높고 전시 몰입도가 매우 높은 공간이라 벌써 기대가 된다.
최근 컬렉터들의 관심 신진작가인 슈무, 이안온 작가도 아시아프를 통해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다. 아시아프는 대한민국의 젊은 미술전공 학생들이 많이 도전하고, 엄격한 심사에 의해 선정되었음에도 사실 모든 작가의 작품들이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들 중 상당수가 맞이하게 되는 현실은 아래와 같다.
아시아프에 불합격하게 되는 경우
아시아프에 합격했지만, 단, 한 점의 작품도 판매하지 못한 경우
단, 한 점의 작품도 판매하지 못한 것도 고사하고,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작품을 게재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아시아프에 참여했지만 자신의 소셜미디어 팔로우 변화가 전혀 없는 경우)
10만 원 작품만 판매되었다고 해서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어떤 누구도 10만 원을 허투루 쓰지는 않는다. 가격을 막론하고 누군가가 기꺼이 10만 원을 지불했을 때는 비용 이상의 가치를 공감했다는 증거이다. 많은 참여 작가들이 전시가 종료될 때까지 작품을 판매하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엄격한 심사를 통과했지만 냉정한 현실을 맞게 된다.
미술 관련 방송에서 만나 동향에 동갑이라 친구가 된 전시기획자가 한 대학의 졸업작품전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잔뜩 보내왔다. 그 친구는 미술 박사학위가 있고, 학업을 마치고 지금까지 미술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이다. 사진을 보며 그 친구와 어떤 학생의 작품이 좋다, 안 좋다 등의 평가질을 시작했는데 결국 선호도의 차이는 있지만 직업 작가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은 똑같이 선별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유명 대학이지만 관심을 두고 성장을 지켜볼만한 사람은 없었다.
다음 달에도 매우 좋은 졸업생을 배출해내고 있는 모 대학교의 작품공개 전에 가볼 생각이다. 내가 미대의 졸업 작품전들을 보며 느낀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래도 상위권 대학의 학생들 작품 수준이 높다
1년에 회화과를 졸업하는 학생 중 성공여부를 떠나서 전업 작가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학생은 채 몇 명 되지 않는다
심지어 1년에 단 한 명의 전업작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도 많다
정도이다.
물론, 서양화가 아니더라도 조형 및 동양화 전공자 중에도 필력이 좋은 학생들이 정말 많고, 산업디자인 출신 중에서도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가진 학생들이 있다. 실력을 떠나서 모든 학생들이 우선 전업 작가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IT업계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으며 본 IT디자이너 중에는 미대출신들이 적지 않다. 미대생이라고 해서 전업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전업작가가 되었다는 것 또한 성공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전업작가가 된다면 아시아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냉정한 현실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아니, 대부분 맞이하게 된다. 신진작가 중에서 작품 활동만으로 취업을 한 동년배들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작가는 대한민국에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술가가 된다는 것 혹은 미술계에 종사하겠다는 것 자체가 경제적 안정의 확률 관점에서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선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선택이 숭고하거나 존경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우선 전공의 자부심을 가지려면 그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작업을 했거나, 아니면 미술사에 대한 전문가로 인정받을 만큼의 학식이 있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은 입학이 어렵지 졸업이 어렵지 않다. 세상 누구도 알량한 4년을 보낸 사람마저 전문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미대가 아니라 어떤 전공이라도 그건 마찬가지이다.
인생은 실전이다. 자신의 전문성은 졸업장이 아닌 포트폴리오로 평가받아야 한다. 세상으로부터 평가받을 자신이 없다면 전공 부심은 평생 이루어 낸 업적이 해병대 제대 밖에 없는 김춘배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게 보인다는 걸 알아야 한다.
글을 다 쓰고 나니 내가 첫 컬렉터였던 작가, 작가 지망생들이 생각난다.
"저 지금 너무 떨려요. 제가 처음으로 제 그림을 판매해 봐서요."
라고 말하며 나를 바라보던 학생. 졸업작품전을 보니 내가 컬렉팅 한 작품과는 완전히 변한 화풍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내가 신진작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컬렉팅을 하지만, 그 작품들은 그 작가가 성공한다고 해도 경제적 가치가 크지 않다. 성공한 작가의 신진 작가 시절 작품까지 대접받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그걸 알면서도 컬렉팅을 하는 이유는 단지 '응원'은 아닌 것 같다.
그 시점에 그 비용으로 충분한 가치를 환원했고
어쩌면 남들보다 먼저 이 작가의 가치를 나는 확인했다는 증명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도 부심을 갖고 싶어 하는 겨우 그런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