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를 사면 안 되는 이유

좋은 말 할 때 사지 마

by 구찬우

처음부터 원화를 컬렉팅 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위에 컬렉터가 없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컬렉팅을 판화로 시작하게 된다. 판화는 에디션 작품이다 보니 가격적인 면에서도 접근성이 좋고, 원화보다는 다양한 유통구조를 가진 편이다. 예로, 예술의 전당 상점에만 가더라도 몇 작가들의 판화가 판매 중이고,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프린트 베이커리 매장을 통해 구매할 수도 있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에서 유명 작가의 이름을 검색하면 포스터나 판화를 판매하는 스마트 스토어등의 노출도 많다. 이번 글에서는 판화의 컬렉팅에서의 가치와 금전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판화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판화를 영어로 하면 'print'이다. 비록 원화보다는 저렴하다고 해도 큰 경제적 지불을 하고 구매한 판화를 프린트라고 한다면 솔직히 속상할 수 있지만, 판화는 미술의 한 장르이긴 하지만 그 시작은 인쇄술이기 때문이다.


1. 판화의 종류


* 실크 스크린 (silk screen) : 유명 작가들의 판화 중 가장 많은 작품들이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제작이 된다. 요즘은 디지털 전사 장비도 워낙 잘 나와서 주변에서 보기 쉽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의류 공장에서 로고나 이미지를 전사할 때도 많이 사용했고, 대학가에서 (특히 운동권) 인쇄물을 만들 때 많이 사용했던 방식이다.

실크처럼 얇은 천에 (물감을 투과시킬) 이미지나 텍스트를 디자인하고 강한 빛을 쬐어 특정 부분만 물감(안료)이 투과되도록 만들고, 그 스크린에 물감을 올리고 손으로 밀어내며 종이 혹은 인쇄 대상에 스크린당 하나의 색을 반복 인쇄하게 된다. 보통 몇 가지의 색을 사용하였는가에 따라서 1도 (1가지 색 사용)에서 3도 (3가지 색 사용)등으로 불린다. 인쇄물에서는 색을 도트처리 하면 3 원색으로도 대부분의 색상을 재현할 수 있기에 4도 이상의 스크린을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미술 작품의 판화에서는 정확한 색상이 중요하기에 7도 이상을 사용하기도 한다. 유럽 쪽에서 다량의 실크스크린 제작을 위한 자동화된 기계를 본 적 있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실크 스크린 작품들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국내 유명작가의 실크스크린 판화 중 상당수는 '가현판화공방'에서 제작된다.


* 지클레 (giclée) : 컬렉팅에 관심 있는 사람 대부분은 들어 봤지만, 컬렉팅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인쇄 방식이다. 지클레 프린팅의 발색과 색 제현력과 보전력은 차치하고 지클레는 디지털 프린팅의 한 방식이다. 육안으로 봤을 때 최고 수준의 색 제현과 최대 dpi를 가지고 있어 마치 원화를 재현한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평면 회화도 3D라서 (마띠에르) 지클레가 원화를 제현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냥 비싸고 보전력이 좋은 디지털 프린터로 출력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리미티드 판화의 상당수가 해당 방식으로 제작되는 추세이지만 지클레 방식의 판화는 사실 시장에서는 저평가되기 쉽다. 누군가에게는 전통적 판화 제작 방식이 아니기에 단순한 디지털 출력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관세법상 미술품의 수입에 있어서는 관/부가세가 부과되지 않는데 판화의 경우에 전통적 방식으로 수제작 되었으며, 더불어 작가의 서명이 있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러므로 지클레 방식의 판화는 작가가 아무리 유명하더라도 관세 대상이 된다. 요즘 대부분의 판화가 디지털 인쇄방식으로 제작되고 있어 한국의 관세법 자체가 시대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촌극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많은 컬렉터들이 가진 판화에 대한 보수적인 입장과도 일맥하고 있다. 같은 작가의 판화라고 해도 시장에서는 지클레 판화의 경우 매우 저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 석판화 (Lithography) : 인쇄술 관점 아닌 판화 기법 중 가장 전통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완벽하게 평면으로 만들어진 기공이 없는 돌 위에 회화와 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종이로 찍어내는 방식이다. 안료의 성질과 기술력에 따라 여러 장 (에디션)을 제작할 수 있지만 실크스크린처럼 원하는 만큼의 수량을 제작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작가가 원하는 발색과 구상 그대로가 제현되는 장점이 있지만 인쇄를 거듭할수록 안료가 소모되므로 색상은 흐려지게 된다. 그래서 석판화의 경우 먼저 찍은 판화와 뒤에 찍은 판화의 색상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가 잦다. 먼저 찍은 판화의 경우 속칭 색이 쨍한 반면, 뒤에 찍은 판화는 색이 흐리다. 통상 찍어낸 순서대로 에디션을 부여하기에 석판화의 경우 앞선 번호(에디션)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과거 전통적 방식의 석판화에 해당하며 요즘 석판화 제작 방식이라고 유통되는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이런 현상이 없다. 왜냐면 해외의 석판화 제작 기계를 보면 전통적 방식이 아니라 그냥 인쇄 머신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컬렉터들 입장에서는 전통적 제작 방식인 석판화를 지클레 보다는 선호할 테니 석판화로 제작하는 것이지 실제 그 제작 과정은 그냥 공장에서 찍어낸 판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 에칭/에퀴틴트 (Etching/Aquatint) : 과거에는 인쇄술에 있어 삽화를 할 때 첨단의 기술이었을 것 같다. 주로 동판에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을 긁거나 부식시킨 후 해당 부분에 안료가 스며들면 종이를 대고 강한 압력을 주고 원하는 부분만 안쇄하는 방식이다. 에칭은 주로 선으로 표현하고, 에퀴틴트는 면을 사용한다. 에퀴틴트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고야의 판화 연작인데, 에퀴틴트라는 기술자체가 너무 어렵고 장인들의 영역이라 한국에서는 에퀴틴트 방식의 판화가 많이 없다. 이러한 동판화 제작 방식은 메조틴트(Mezzotint)로 발전하게 되는데 메조틴트는 동판의 부식 없이 미세산 선으로 원하는 색상으로 도안을 만들어가는 동판화 방식이다. 경매에 관심이 있는 컬렉터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한국 메조틴트의 거의 유일한 마스터 황규백 작가가 있다. 황규백 작가는 60/70년대 파리에서 메조틴트 제작 방식을 배워왔다고 알고 있는데 이때가 미술사에 있어 판화의 가장 전성기였다고 알고 있다.


* 목판화 (Wood-cut) : 목판화는 사실 설명이 딱히 필요 없는 방식이라 생각된다. 아마도 초/중/고 미술시간에 한번 정도는 고무판화나 목판화를 해봤을 것 같다. 원하는 이미지를 양각의 방식이든 음각의 방식으로 제작할 수 있는데 사실 미술계에서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섬세한 작업을 위해서는 매우 고가의 나무가 필요하지만 목판화를 대체할 다른 방식의 제작 방법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 까지 세계최고 수준의 목판화 제작을 하고 있는 공방은 몇 군데 남아 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중에 일본의 목판화 공방이 있고 가끔 유명 작가의 목판화 작업이 공개될 때 제작이 대부분 일본인 것은 이를 방증한다. 국내에서는 아마 민중작가 '오윤'의 목판화가 가중 유명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 당시 오윤의 목판화는 에디션 작품이라는 개념이 아니었고 인쇄의 개념이었다.


이 정도면 대부분의 판화 제작 방식은 언급된 것 같다. 그 외에도 '리노컷'도 있지만 이는 고무판화로 미술계에서는 딱히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나마 데이비드 슈리글리가 리노컷 작품들을 꾸준히 릴리즈 했었다. 그의 작품 자체가 워낙 어린아이가 낙서한 듯한 그림이라 리노컷이 가진 투박함과 그나마 어울릴 수 있었다. 프린트 베이커리 같은 곳에서 자주 발매하는 디아섹 방식은 판화의 카테고리에서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공산품의 제작방식으로 빼는 것이 맞아 보인다. 그러면 이제 판화의 금전적 가치에 대해 알아보자.


2. 판화의 금전적 가치


아마 최근 가장 컬렉터들 사이에서 언급이 많았던 판화 작품은 '아야코 로카쿠'의 판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에디션 작품들은 정해진 수량을 발매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Time-limited 방식 또한 존재한다. 이는 특정 기간 (예, 특정일자 혹은 24시간) 동안 신청을 받은 모든 신청건을 발매하는 방식이다. 너무 돈독 오른 방식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너무나 갖고 싶었던 작가의 작품을 주문 시간 안에만 신청한다면 100%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최근의 사례로는 제임스 진, 데미안 허스트 등의 작가도 이런 방식으로 에디션 작품을 릴리즈 하였었다.


아야코 로카쿠의 판화는 최소 몇천만 원 정도의 가격이자만 2년 전 Avant Arte에서 24시간 Time-limited 방식으로 발매한 주문 가격은 한화로 약 7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2년간 판매 금지 조건이 있었지만 해당 판화가 발매되자마자 일본과 한국의 미술품 경매에서는 2백만 원을 넘는 낙찰가가 기록되기도 했다. 해당 판화의 24시간 주문량은 3천 개가 넘었고 특히 작가의 수기 서명은 없었지만 발매가의 몇 배가 되는 가격을 기록한 것은 많은 컬렉터들 사이에서 회자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나 역시 해당 판화를 주문하여 소장하고 있는데 나는 금전적인 가치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아야코 로카쿠의 작품을 소장할 유일한 방식이었기에 구매하였다. 현재는 150만 원 정도의 가격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야코 로카쿠 판화의 가격 때문에 컬렉터들 사이에서 거론이 많았던 것은 아니고, Time-limited 방식과 그 발매 수량이 이슈였다. 너무도 폐쇄적인 미술계에 원하는 누구에게나 기회를 제공하는 마켓은 사실 경매 밖에 없다. 경매 또한 최고가 낙찰의 방식이기에 누구에게나 라는 조건과는 상충되지 않는다. 기존에 아야코 로카쿠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컬렉터들의 입장에서는 1백만 원도 하지 않는 판화 작품이 그것도 수량도 정하지 않고 발매한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해당 판화를 '서명도 없는 디지털 프린트 따위'로 치부하였는데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대부분 판화는 사실 '여러 장 출력된 디지털 프린트 따위'가 맞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장 판화 유통량이 많은 작가는 무라카미 다카시 일 것이다. 지금도 쉬지 않고 판화를 찍어대고 있으니 아마 그의 판화 유통량이 세계 1위이지 않을까? 무라카미 다카시의 과거 판화 발매 가는 대략 1백만 원 정도였고, 발매와 동시에 판매한다 해도 2백만 원은 받을 수 있기에 모두가 갖고 싶어 했었던 판화였고 캐시 그 자체였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운영하고 있는 카이카이키키에서 온라인 발매를 했었는데 발매와 동시에 서버가 먹통 되거나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발매량이 너무 많아서인지 과거보다는 가격이 많이 내려가 있지만 그래도 발매가의 방어는 어느 정도하고 있다.


판화의 가격이 상승한 사례 말고 하락한 사례는 없을까? 사실 대부분의 판화가 그렇지 않나 생각된다. 심지어 원화의 대부분도 갤러리 발매가를 지키기 어려운데 판화가 어떻게 가격방어를 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판화는 컬렉팅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최후의 방식이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는 금전적인 기대를 버리는 것이 좋다.


물론, 판화가 원화보다야 훨씬 금전적 부담이 없어 접근성이 용이하고 유통 판로도 다양하지만, 컬렉팅 초보자라면 판화에 대해서는 더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유통되고 있는 판화의 가격은 발매가 보다 훨씬 높게 책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재판매를 했을 때는 절대 회수불가능한 가격이라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많은 2차 갤러리들이 인기 작가의 판화를 미끼로 호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판화의 현 시세를 알고 있고, 소장의 기쁨과 작품을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판화만큼 좋은 선택도 없다.


3. 금전적 가치를 포기해도 판화를 사면 안 되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자면, 나는 '사지 말라'라고 대답할 것이다. '유니크 피스'의 마켓인 미술시장에서 '유니크 피스'도 방어하지 못하는 가격하락은 판화라면 더욱 어렵다. 그렇다면 금전적인 관점이 아니라, 판화라는 미술 장르 자체에 대한 관점에서 '왜 판화를 사면 안 되는지' 말해보려 한다.


판화가 예술의 한 장르가 맞습니까?

나의 대답은 '예스' 하지만 대부분의 판화는 '노'. 우선 당신이 아는 판화가를 말해보길 바란다. 우선 나부터 말해보면, 물론 회화가 더 유명하겠지만 판화로도 유명한 고야, 위에서 언급한 황규백 작가 그리고 판화의 마스터인 샤갈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최근 활동하는 판화 작가 몇 명을 알고 있는가? 판화 작품만을 제작하는 한국 작가 몇 분과 일본 작가 한 분이 떠오르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작가분의 이름을 적기 위해서는 인스타그램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물론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서 최근 활동하는 한국 판화 작가의 이름을 몇 명이나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작년 즈음인가 홍익대 미술학부에 판화과가 있는데, 판화 전담 교수는 한 명도 없다고 했다. 회화과 교수가 판화과를 겸임하고 있었고 판화과에서는 판화 전담 교수에 대한 요청을 하였지만 결국 교수 채용을 못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판화를 가르칠 교수가 없는데 판화과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긴 하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국내에 홍익대학교 판화과 교수로 임용될 수 있는 이력을 가진 사람이 있긴 할까 싶다. 그래서 판화과 졸업 작가분들이 일본 대학으로 유학을 많이 가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일본까지 가서 판화를 배우려는지 사실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판화 공방을 만들어서 한국에서 발매하는 판화물량을 아도 찍겠다는 각오라면 응원하겠지만, 판화 작가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이라면 과연 가능성이 있는가 싶다.


대한민국 최상위 미술대학인 홍익대학교 판화과에서만 봐도 알 수 있는 게 한국의 판화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해외라고는 딱히 다를까? 물론 일본과 유럽은 한국보다야 판화 공방과 마스터의 수가 많긴 하더라도 그 하락세는 마찬가지 아닐까?


프랑스는 판화라는 미술의 한 장르에 대한 큰 자부심이 있었고 매년 판화 대회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 유럽 판화 대회에서 대상으로 모든 나라를 압살한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일본이다. 당시 일본에는 전문 판화가가 많았고 시장도 컸다. 당시 작가들의 작품들은 아직까지도 (활발히는 아니지만) 거래가 되고 있다. 일본 특유의 공방 문화와 장인정신은 판화계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유럽 시장도 점점 흥미를 잃어 갔던 것 같다. 당시 일본 작가들의 우승작들을 보면 이게 21세기 디지털 작품인지 판화인지 알 수도 없는 수준까지 가버렸다. 판화의 기술은 어느새 일본에 의해 최정상에 도달했지만 그 기술은 더 이상 필요한 기술이 아니었다. 판화의 종류에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risography 인쇄술도 일본이 발명한 것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기계의 영역으로 전환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학적 관점을 위한 멀티플 기술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기계의 영역으로 바뀌게 되었다.


판화는 작품이 맞습니까?

나의 대답은 '노'. 솔직히 과거처럼 작가가 작업에 개입하는 것도 아니고 판화 공방에서 나온 결과물 정도에 합의하고 서명하는 수준이 아닌가? 뭐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돈복사 놀이이지, 이게 작품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판화만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있다면 이해하겠지만, 현재 발매되는 대부분의 판화는 기존 작품의 인쇄물일 뿐이다. 과거 고야나 샤갈처럼 판화 자체가 작품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어딘가에 원화가 존재하고 그 원화를 그냥 똑같이 인쇄한 것을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현대 미술시장에서 유통되는 정말 대부분의 판화는 원화에 대한 인쇄물로의 기능만을 담당하고 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판화를 산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미술품을 컬렉팅 하는 제1의 욕동은 아마 '소유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이상 판화를 사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아야코 로카쿠의 작품을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서 구매를 하였다. 심지어 마츠야마 토모야츠의 사인이 된 한정 포스터를 매우 고가에 구매한 일도 있었다. 나의 소유욕이 이성적 판단을 앞지르는 순간 나는 판화를 구매해 왔다. 앞으로도 어쩌면 판화를 계속 구매하게 될지도 모른다.


소장 판화 중에서 재미있는 작품들

목판에 조각도로 그림을 그리는 유명한 '슈무' 작가의 목판화. 슈무 작가에게 직접 구매했었는데 슈무작가의 유일한 공식 판화 작품인 것 같다.
판화를 발매하지 않는 박민준 작가의 판화. 개인 소장 목적과 선물용으로 만들었다고 작가님께 들었다. 판화의 원화는 미국의 컬렉터에게 소장이 되어 있다고.
정식 발매한 판화는 아니고, 이노강 작가님께 부탁해서 만들어진 판화라 소장작이 에디션 1번.
코로나 감염이 시작되었을 때 N5BRA작가가 직접 제작한 실크스크린 판화. 1장당 10만 원, 100장 제작되었으며 전액 기부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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