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서의 은유와 상징

기준은 수준

by 구찬우

예전에 나는 솔로라는 연애 예능 프로그래에서 '광수'라는 남자 캐릭터가 데이비드 살레의 그림을 설명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작가의 의도는 blah blah blah,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해석이 맞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작가의 의도를 이해 혹은 해석할 수 있는 것을 하나의 능력처럼 뽐내었다.


전시를 즐기는 사람들과 컬렉터의 가장 다른 감상 태도가 있다. 우선 내가 컬렉팅을 시작하기 전에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했을 때는 아마도 나 역시 광수를 닮아 있었던 것 같다.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를 해석해 내는 것이 미적 능력이라도 되느냐 지적 게임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본 대부분의 컬렉터들은 이런 지적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미 시장에서 합의된 작가의 작품세계를 학습했고, 오히려 한 작품 한 작품의 의도와 의미에는 무관심해 보인다. 이렇게 말하면 컬렉터들은 미술을 재화적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속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컬렉터들이 작가의 의도와 의미 해석에 집중하지 않는 이면에는 '미술에서의 은유와 상징이 가져야 할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은유와 상징에 무슨 기준이 필요한 가라고 하겠지만 지금부터 예를 들어 보려고 한다. 이 주제에 딱 맞는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이 있지만 노골적인 네거티브가 포함될 수 있어 망설이게 된다. 그래도 두리뭉실한 이야기보다는 실제 사례가 더 이해하기 쉬울 거라 최근에 만났던 한 작가님의 작품 세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호박'이라는 상징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물론 이 작가는 쿠사마 야오이는 아니고, 최근 페어에 작품을 출품했던 한국 기성 작가이다. 호박을 소재라 작품 활동을 하시는데 그분이 직접 소개하길, 호박은 '어머니'를 상징한다고 했다. 호박에는 씨가 많이 들어 있어 생명과 잉태 즉 어머니를 상징하고 호박의 꼭지는 '탯줄'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분의 작품에 있어 호박은 '어머니'와 '생명'의 상징이었다.


그걸 들은 나의 생각은 뭐였을까? 노골적으로 말해보자면 '어쩌라고... 그래서 어쩌라고...'였다. 그러면 이제 '미술에서의 은유와 상징이 가져야 할 기준'이 뭔지 말해보려고 한다. 그 '기준'은 바로 '수준'이다. 그 작가가 작업하는 호박의 상징은 수준이 너무 낮다. 호박에 씨가 많은 것이 생명을 상징한다라는 것에 어떻게 공감해야 할까? 아무런 서사도 없고 그녀가 호박을 선택해야 할 당위성도 없었다. 그건 마치 다이소에 가서 1천 원짜리 물건을 고른 것처럼 의미가 없다. 물론 그 작가가 몇십 년을 호박을 상징으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해도 그건 더 안타까운 상황이다. 예전에 무한동력기를 계속 개발하고 있는 노인을 티브이에서 본 적 있는데 비슷한 상황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미술에서의 은유와 상징'에 있어 그 '수준'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미술에서의 은유와 상징은 이 중 최소 하나 이상에 해당되어야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ㄱ. 인문학적 가치, ㄴ. 철학적 가치, ㄷ. 미학적 가치 마지막으로 ㄹ. 작가의 인생과 합일되는 완벽한 서사라고 생각한다. 그럴싸해 보인다면 다행이고 뭔 개소리냐라고 한다면 죄송할 따름인 나의 판단 기준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미술을 통해 수수께끼를 풀고 있는 게 아니다. 작품에 숨겨진 의미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의미 혹은 상징이 가치가 있냐는 것이 중요하다. 그 가치의 평가는 역시 시장에서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가끔 내가 위에서 열거한 4 가지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음에도 시장에서 고평가 된 작가가 있더라도, 시간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 사상누각의 고평가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앞서 소개한 '호박'이라는 상징을 사용한 작가와 만나 나눈 짧은 대화를 반추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루이스 부르주아'를 떠올렸다. '엄마' 그리고 '생명'을 그녀는 거미를 상징으로 표현하였다. 그녀의 대표 작품인 초대형 청동 거미 조형 '마망'은 그 자체로도 압도적이다. 그녀의 경우는 내가 정한 4가지 기준을 모두 최고 수준으로 만족하는 작가이다. 루이스 브루주아의 '여성주의-엄마-생명'이라는 연결적 서사는 사회적, 인문학적, 철학학적 가치와 더불어 완벽하게 작가와 합일되는 서사를 이루고 있다. '25.8/30~'26.1/4까지 호암 미술관에서 루이스 브루주아전이 전시 될 예정이라 큰 기대가 된다.




스타벅스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예전에 스타벅스에서 발매한 김선우 작가의 도도새 캐릭터 MD상품이 오버랩된다. 김선우 작가에게 있어 도도새는 분명 초기에는 정글 같은 현대사회 속의 사람의 상징이었지만, 요즘은 어떤 식으로 작품에 사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도도새가 작가의 캐릭터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김선우 작가와 작품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김선우 작가에게 은유와 상징의 4가지 평가 기준을 적용해 보면 어떠한가? 우선 인문학적 가치는 없고, 철학적인 부분도 딱히 없어 보인다. 미학적 가치에는 최소 기준 충족 정도의 평가를 주더라도 마지막 작가의 인생과 도도새의 상징과 합일되는 서사는 사실 없어 보인다. 결국 김선우 작가 역시 시간의 냉정한 평가를 버텨낼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그렇게 쉽진 않을 것 같아 보인다.


마침 오늘(2025년 광복절)은 롯데뮤지엄에서의 옥승철 작가 전시 첫 번째 날이라 오전에 다녀왔었다. 6월에 이미 티켓팅을 해두었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옥승철 작가를 얼마나 오래전부터 꾸준히 좋아해 왔는지 다 알거라 생각한다. 옥승철 작가의 전시는 3개의 섹션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1 섹션에서는 트로피 시리즈가 전시되고 있었다. 2023년 처음 소개된 트로피 조형이 초대형으로 제작되어 있었는데 굉장히 압도적이었다. 트로피는 전쟁에서 승리의 상징이었다. 승리의 상징은 곧 누군가의 패배의 상징이기도 하다. 초기 트로피는 적군의 목을 베어 걸어두는 형태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2023년 소개한 트로피 이전부터 소개한 목이 잘린 두상 시리즈와 잘 연결된다. 우선 1 섹션에서 소개되던 작품들 간의 상징과 은유에 대한 스토리가 나름 괜찮았는데 이는 롯데뮤지엄에서 완성한 스토리인지 정말 작품 제작 전부터 작가의 서사였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옥승철 작가의 시그니처 시리즈였던 aka. 헬멧시리즈 섹션에서 헬멧을 SNS에서 익명의 공간에서의 군상으로 상징한다고 소개하고 있었는데 너무 억지스럽다고 느꼈다. 정말 옥승철 작가가 헬멧 시리즈를 제작했을 때 그런 상징으로 작품활동을 했다고? 정말??? 그냥 애니메적 요소를 차용해서 '원초적 분노'를 표현한 시리즈 아니었나??? 물론 작품의 해석과 사회적 합의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난 그렇게 느껴서 여태껏 좋아했는데... (이 부분에서는 나도 결국 나는 솔로의 광수와 똑같은 놈이구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컬렉터를 변호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컬렉터들이 작품 하나하나가 가진 의미 같은 것에 무심한 이유는 컬렉터는 작품이 아닌 작가를 보는 사람이고, 전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작품하나하나에 더 몰두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 옥승철 전시를 언급한 이유는 4가지 기준의 수준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옥승철 작가가 워낙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고 (심지어 공개된 사진도 딱히 없고) 미스터리 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서사를 만들기 더 좋을 것 같다. 트로피 시리즈에 대한 롯데 뮤지엄 측에서 만든 서사는 작가의 서사와 합일된다고는 볼 수 없더라도 좋은 접근이었던 것 같은데, 헬멧 시리즈에 대한 억지 서사는 촌극에 가까웠다. 옥승철 작가가 한국 미술계에 보여준 이미지의 영향력은 매우 강했지만 어쩌면 지금이 분수령에 있는 것 같다. 이번 뮤지엄 전시를 계기로 더 탄탄한 서사로 무장하고 세계에 소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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