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도 물론 독창성을 가져야 합니다
브런치에서 '요즘 작가에게서 독창성을 원하고 찾는 컬렉터가 없다'라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컬렉터의 수준을 말하였는데 충분히 공감을 할 수는 있지만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술계는 크게 4개 분류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 작가
- 뮤지움/학술계
- 마켓
- 구매자
물론 입장료 수익을 위한 기획전시 같은 전시계도 미술계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경우는 엔터사업의 구조에 더 가깝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공급자가 수요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을까? 없다.
공급자는 수요를 예측하고, 수요자가 원하는 이상의 상품을 공급해야 한다. 더불어 경쟁사 보다 더 훌륭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다. 간단한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미술계라고 예외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큰 경기도 오산이다. 물론 예술은 당장 수요자가 원하는 공급을 하는 행위가 아니다. 하지만 수요자가 원하는 이상의 공급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공급자가 한국의 컬렉터 수준이 낮아서 인기 작가 몇 명에게 쏠림이 개탄스럽다면 해외로 나가야 한다. 한국의 컬렉터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컬렉터의 수가 문제 일 수 있다. 해외에서 인정받은 한국 예술가가 된다면 한국 컬렉터들이 지켜보고만 있을 것 같은가? 절대 그렇지 않다.
공급자들은 안일하게 한국이라는 갈라파고스 안에 안주하는 법은 알고 있지만, 세계로 나가는 방법을 모른다. 국제 갤러리 및 현대자동차와 같이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는 많은 미술계 종사자, 기관 및 기업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렇다면 세계 미술시장에서 인정받고 활발히 유통되고 있는 한국작가가 몇 명이나 있는가. 난 한국 미술계는 한국 컬렉터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 시장에서 유통되지도 못할 작품들을 한국 컬렉터들에게 공급하고 소비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들도 억울할 것 같다. 아직 한국에는 세계 미술계로 나아갈 플랫폼과 기회가 너무 부실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 글로벌 갤러리들의 한국 진출로 몇몇 작가들이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좋은 소식이긴 하지만, 뭐 아직 딱히 가시적인 성과는 모르겠다.
결국 한국 미술계는 한국 컬렉터에게 무엇도 요구할 자격이 없다. 그게 시장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2025.06.05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캐서린 번하드의 한국 전시 VIP초대행사가 있었는데, 운이 좋게 주최 측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갈 수 있었다. 관련 내용으로 단톡방에서 얘기를 나누다 어떤 분이 '캐서린 번하드는 현대 미술에서 어떤 포지션인가'라는 질문을 했고, 나는 '현대 미술은 이래 그려도 된다는 포지션을 맡고 있다. 앤디 워홀이 오래전에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잘 올려 두신 누님.'이라는 정문우답을 했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캐서린 번하드의 그림 하나만 보여준다면 시장에서 각광받는 아티스트의 작품이라고 절대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어떻게 현대 미술에서 포지션을 운운할 수 있는 작가로 성장하였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100% 장담컨대 그녀가 한국인이었다면 지금 즈음엔 퇴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작가의 가치는 철학에 있다고 앞선 칼럼에서도 자주 강조하였다. 작가의 세계관을 소개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미술계와 합의하는 프레임이 한국 미술시장에서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기능을 누가 해야 하고 해왔을까? 우선 당신은 몇 명의 미술평론가를 알고 있는가. 나는 우선 4명이 떠오른다. 물론 미디어에 그나마 종종 얼굴을 비춘 분들이라 알고 있을 뿐이고 그들이 한국 미술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우선 한국 미술계에는 학예사들의 활동이 부족함을 느낀다.
가장 중요한 역할 수행자는 뮤지엄이다. 국내에 국내 작가의 세계관을 소개하고 가치를 부여할 공신력과 영향력이 있는 기관/뮤지엄은 '국립 현대 미술관', '부산 시립 미술관' 그리고 '리움' 정도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현재 상황에서는 공공 미술관은 지금과 같은 기존 자본 미술시장에서 열외 된 작가를 조명하고 소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된다. 너무 아카데믹하고 실험성만 남은 작가와 작품이라고 해도 공공기관이 아니라면 그들은 미술계에 소개될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결국 1차 갤러리에서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아직 까지는 그 기능적 역할이 많이 부족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매년 수백 개의 전시를 보아 오면서 갤러리를 통해 직접적으로 작가의 세계관과 철학을 소개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우선은 갤러리 홈페이지의 작가 소개부터 매우 부실하다. CV가 제대로 업데이트도 되지 않을뿐더러,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작가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작가의 SNS와 웹서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전시 서문도 대부분 조악하다. 유명 갤러리인데도 전시 서문이 너무 조악해서 작가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겠다는 건지 형식적으로 작성한 건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1차 갤러리의 목적이 작가 발굴과 판매에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내가 감히 사업자들에게 이런 걸 요구할 자격은 없지만, 한국 작가들의 가치 재고와 더불어 갤러리의 장기적 가치를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철학이 시장에서 합의되고 평가되도록 하는 기능적 역할에 갤러리가 집중한다면 분명 시장과 컬렉터들이 그에 응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