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시즘 코인에 탑승하지 못하는 아시아 아트
정말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쓴다. 9월은 프리즈/키아프가 열리는 코리아 아트 위크 기간이고 이 기간 동안은 매일 1시간 일찍 출근 / 오후 5시에 칼퇴하고 매일 최소 하나의 전시를 봤었다. 수많은 작품을 보고 많은 작가를 만나며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이미지를 모자란 나의 뇌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최대한 아트 위크 기간 이후에도 볼 수 있는 전시는 미뤄뒀다가 그 이후에 하나씩 찾아갔다. 9월 말이 되니 드디어 도서관에 앉아 글을 쓸 여유를 찾게 되었다.
우선 흑인이라는 표현 자체가 글로벌 센스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피부색으로 인종을 구별하는 표현 자체가 인종차별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견해는 피부색으로 인종을 구별하지 않는 것 또한 하나의 레이시즘이고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부르게 했던 우매했던 시절과 비슷하다 생각한다. 흑인을 흑인이라고 편하게 부를 수 있을 때 진정한 인종차별이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BLM (Black Lives Matter)을 기억한다. 그 시작은 2012년이었다 해도 SNS를 통해 우리가 직접 와닿았던 시기는 아마 2020년 BLM Protest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종을 막론하고 BLM을 포스팅하며 레이시즘 (Racism, 인종차별주의)에 저항하는 자신을 피력했었다.
나는 미술에서의 은유와 상징 편에서 최소 ㄱ. 인문학적 가치, ㄴ. 철학적 가치, ㄷ. 미학적 가치 마지막으로 ㄹ. 작가의 인생과 합일되는 완벽한 서사 하나에는 해당되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사실 인문학적 가치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는데 사회적/역사적/문학적/경제적 가치가 모두 포함되는 말이다. 더불어 철학적 가치와 미학적 가치 또한 넓은 범위에서는 모두 인문학적 가치에 포함될 수 있지만 이 둘은 너무나 중요한 평가 요소로 별도 분리하였다.
시대가 BLM을 외치고 있을 때 새로운 흑인 스타가 태어나는 데 그는 바로 모든 컬렉터가 흑인 아티스트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아모아코 보아포' (가나, 1984, 이하 보아포)이다. 물론 가장 유명한 흑인 아티스트는 검은 피카소 '장 미셀 바스키아' (미국, 1966~1988)이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상징과 표현은 레이시즘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현시점에서 조명해 보면 당대 최고의 스타 '앤디 워홀'과 함께 했던 슈퍼스타였으며, 어떠한 결핍의 아이콘으로 조명받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BLM시대에 맞는 새로운 스타가 필요했으니, 그가 바로 보아포이다.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 강력한 화풍뿐만 아니라, 실제 가난한 가나 출신의 화가이기도 하고, 흔하지 않은 육필화법 (finger painting) 또한 뭔가 결핍이라는 것을 표현하기에는 매우 훌륭한 재료가 되었을 것 같다. 그는 이후 가고시안 소속 작가가 되면서, 몇십 억대 옥션 레코드를 기록하게 된다. 요즘은 몇 년 전만큼의 보아포에 대한 선망성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는 여전히 현시점 흑인 미술을 대표하는 일인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보아포를 발굴한 사람이 보아포 등장 이전 흑인 미술을 대표하던 케힌데 와일리 (미국, 1977)라는 점이다.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보아포의 작품을 보고 자신의 전속 갤러리에 그를 추천하였다고 한다.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의 초상화로 유명해진 흑인 미술의 대표 아티스트 케힌데 와일리는 그가 샤라웃 한 보아포가 자신의 권좌를 넘어서 글로벌 인지도 최상위 흑인 아티스트가 될 거라고는 아마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케힌데 와일리는 퀴어이다. 내가 생각하는 현대미술 3대 코인이 있는데, 그것은 '여성주의/인종주의/퀴어'이다. 케힌데 와일리는 3대 코인 중 2개에 해당된다.
개인적으로는 두 아티스트의 작품을 모두 좋아한다. 보아포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은 잊을 수 없다. 그가 흑인 미술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운은 아니다. 모든 조건이 시대가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손가락을 따라 리드미컬하고 레어 하게 표현된 보아포 만의 표현주의, 그리고 개인의 서사까지 시대가 완벽하게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보아포만큼 조명받지 못하지만 케힌데 와일리의 작품을 실제로 봤을 때의 감동은 잊지 못한다. 아마 샌디에이고 여행 중 보았던 수많은 작품의 감동을 합쳐도 저 작품 한 점에 미치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TIMKEN 뮤지엄 자체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고 당시 케힌데 와일리의 저 작품 한 점이 뮤지엄의 대표 전시작이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러던 중 2024년 프리즈 서울에서였던 것 같다. 아시아 레이시즘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김상우작가였다. 해외의 한국인이 겪게 되는 아시아 인종차별을 아시안을 대표하는 무쌍의 찢어진 눈으로 표현하고 있다. 매체를 통해 한 번씩 해외에서 무지한 외국인이 동양인을 비하할 때 양손으로 눈을 찢어 보이는 포징이 있는데, 참고로 나는 그 행위에서 어떠한 인종차별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이렇게 방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나에게는 아무런 결핍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외에서 생활하는 아시아인이었다면 아마 분명 차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마침 런던을 방문했을 당시 그의 개인전이 런던의 Herald St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우리가 흔히 대영박물관이라고 부르는 더브리티시뮤지엄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유동이 많은 길에 있었던 크지 않은 갤러리에는 그의 소품들이 여러 점 전시되고 있었지만 갤러리 문이 닫혀 있어 전시를 보지 못하고 윈도 밖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의 전시를 통해 아시아 레이시즘이 세상에서 어떻게 소구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가능성에 대해 알고 싶었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상우 작가를 지켜보고 있다.
벼락스타 보아포를 통해 본 현 미술계의 레이시즘에 대한 수요는 작가와 작품에 의해서 보다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대의 요구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 다시 보아포의 낙찰가는 내리막을 타고 있다. 아마도 시대는 앞으로도 아시아 레이시즘을 요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히스패닉 차별 및 미국 이민자 문제, 팔레스타인 등 더 중요한 이슈가 많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국의 미술이 세계에서 소구 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과연 그때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