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네가 내 앞에 나타난 거야.
나는 내가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줄 알았어. 차갑게 보인다는 말을 들어도 웃을 수 있었고, 혼자인 게 익숙해서 외롭다는 감정조차 흐릿했는데, 근데 네가 내 앞에 나타난 거야.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왔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 벽을 두드렸고, 나는 그게 무너질 줄 몰랐어. 그게 무너지면 내가 무너질 줄은 더 몰랐어. 그래서 너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이 나를 구원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네가 날 망쳐간 거야.
너의 따뜻함은 날 녹인 게 아니라 흐물흐물하게 만들었고, 너의 말은 날 감싼 게 아니라 끝없이 기대하게 만들었고, 나는 너를 만나기 전보다 훨씬 더 형편없는 인간이 되었어. 사랑을 모르던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울고 훨씬 더 많이 기다리고 훨씬 더 많이 망가졌어.
그래서 너는 내게 처음이었고, 동시에 마지막이었어.
나는 이제 다시 사랑하지 못할 거야, 아니, 다시는 사랑하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나는 사랑을 배우는 대신, 너를 통해 무너지는 법만 배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