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서야 인정해.

이제 와서 말할 수 있어.

by 이브 Eve

계단을 오를 때마다 내가 앞서 걸었어.

네가 항상 뒤에 있는 게 좋았어.

사실은 네가 앞서 가는 게 무서웠어.

뒷모습이 멀어지면 다시는 잡을 수 없을까 봐.

계단이라는 건 어딘가로 가는 중이니까,

네가 그걸 타고 나보다 먼저 멀리 가버릴까 봐.

그래서 내가 앞장섰던 거야.


그걸 지금에서야 인정해.

너의 도주로를 막으려는 마음.

그것 때문에 나는 늘 웃는 얼굴로 너를 바라보고,

너보다 먼저 길을 열었어.


일부러 그랬어. 놓치면 무너질 것 같아서.


이제 와서 말할 수 있어.

날 떠나지 마.


그 말 수백 번 삼켰어.

내 자존심이, 내 말투가, 내 표정이,

다 그 말 하나를 막고 있었어.

근데 지금은 그런 거 다 상관없어.


날 구질구질하게 만들지 마.

너 하나 붙잡는 게 그렇게 비참한 일이 되지 않게 해줘.

네가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내가 이렇게까지 무서워했다는 걸,

이제야 고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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