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말하려던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멈췄고, 감정은 닳았다.

by 이브 Eve

통화 버튼 하나가,

내게는 세계의 끝이었다.


불 꺼진 방 안에서 휴대폰 불빛만 깜박인다.

화면 위에는 같은 번호가

여러 번 눌렸다가, 지워졌다.

손끝이 머뭇거릴 때마다,

화면 속 숫자가 사라지고,

내 안의 말들도 함께 꺼져간다.


무엇을 말하려던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멈췄고, 감정은 닳았다.

전화하지 못함은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라,

이제 아무 말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지내지’는 너무 가볍고,

‘보고 싶다’는 너무 무겁다.

그 사이의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휴대폰의 빛이 점점 희미해지고,

방 안의 공기는 어둠에 잠긴다.

나는 여전히 버튼 하나를 누르지 못한 채,

침묵의 끝에 서 있다.


부르지 못한 이름은 마음 안에서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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