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얼마 전 새로 시작한 일에서 만난 65세 되는 할머니께서 내가 건넨 물컵을 받으며 또다시 입을 열었다.
그 분과의 대화는 내내 이런 식이었다. 과거 심각한 가정 폭력과 같은 트라우마를 겪어 상담을 받고 있었다.
"You do not need to say sorry (미안하다고 말하실 필요 없어요)." 그분이 미안하다고 말할 때마다, 괜찮다고 부드럽게 다독였다. 그러자, 그분은 또다시 "Sorry, I say sorry a lot (미안,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해)"라고 하신다.
순간, 미안하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이 오히려 미안해졌다.
"아닙니다. 다 이해해요. 저도 어렸을 때 트라우마를 겪어 '미안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합니다."
사실 나 역시도 반평생을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특별히 잘못한 일도 아닌데, 그 말이 자동소총처럼 따따당 튀어나온다. 사과를 받는 상대는 심한 피로감을 느낄 뿐이다. 습관이 된 말은 진정성을 잃어버리고, 자존감까지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 어떤 말을 가장 자주 내뱉고 있을까?
나의 말버릇 중에는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것들이 있다. '미안해요', '제가 부족해서', '아니요, 저 같은 게 뭐라고...' 겉으로는 겸손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상처와 아픔, 트라우마가 울부짖는 소리다.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스멀스멀 올라와 내 혀에 찰싹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이 습관적인 자기 비하를 깨뜨릴 수 있었던 건, 얼마 전 봤던 박재연 소장의 강연이었다. 박재연 소장은 '뭘 해도 행복한 사람과 불만인 사람의 말버릇이 완전히 다르다'라고 했다.
행복한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는다.
"방법이 있을 거야."
"분명히 여기에도 긍정적인 의미가 있을 거야."
"이만하길 다행이야."
"우리 가족이 더 심하게 아프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크게 안 다쳤으니, 이만하길 다행이야"와 같은 말들이다. 이들은 불편한 마음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꾸고, 큰 사건의 심각성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결국, 행복한 사람은 365일 행복한 일만 있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불행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뿐이다.
사실 나도 이런 긍정적인 말들을 입버릇처럼 한다. 문제는 일할 때, 남에게만 한다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구타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 자동차 사고로 부상을 당한 환자, 가정 폭력을 당해 피멍이 든 환자를 만날 때면 나는 애써 위로한다. "이만하면 다행이죠", "더 심한 사고는 피하셨네요".
문득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남에게는 쉽게 건네던 이 긍정의 말버릇을, 정작 왜 나에게는 하지 못했을까? 그 말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나였는데.
'미안해요' 대신, 오늘부터 나 자신에게 어떤 말을 습관적으로 건네야 할까? 어쩌면 행복한 사람은 그 질문에 매일 답하며 사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