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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네이버 Apr 20. 2024

첫 알코올중독 환자인 수잔 할머니를 만나다

[빙봉빙봉 여기는 응급실] 제 1 화

아침마다 출근할 때 지나는 공원 길이다.


병원으로 출근하는 나의 출근길은 ‘가든 시티’라는 명성에 맞는 아름다운 헤글리 공원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매일 아침마다,

전동스쿠터를 타고 아름다운 나무와 풀잎에서 뿜어내는 향긋한 향기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갈 때마다,

나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내가 살아온 세상과 전혀 다른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병원은 아름다운 헤글리 공원을 사이에 두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운 풍경 한가운데 자리 잡은 병원이지만,

그 속에서 내가 만나는 환자들은 어둡고, 칙칙한 세상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조차 없어 보이는 이들이다.


이제 4주간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드디어 응급실 현장에 투입이 되는 날이었다. 병원 환경도 익숙하지 않고, 여전히 영어 울렁증 때문에 머리에는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메디컬 용어들이 정신없이 내 주위에서 들려오지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때마다 자괴감이 몰려왔다. "아! 정말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곤 했다. 그렇게 복잡한 심정으로 가득 한 채 있던 와중에,  순간 내가 차고 있던 보이쎄라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연락을 주고받는 스피커폰) 딩동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James McDonald (의사 이름/가명), do you want to take a call?”

"제임스 맥도널드입니다. 전화를 받으시겠습니까?"


순간, 심장이 막 뛰기 시작했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네… 못 알아들으면 어떻게 하지?”…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떨리는 가슴을 뒤로하고,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Yes”.

그러자, 의사가 말한다. “Hi, 굿네이버” 그리곤 한 환자에 대해 말한다.


“지금 Side room 1에, 수잔이라는 환자가 있는데, 나이는 70세인데, 혼자 살고요,..

구급대원이 하는 말이 집이 정말 더럽고, 배설물이 집안 곳곳에 있다는군요, 더구나 알코올 중독도 심하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욕실에서 넘어져서 응급차에 실려서 왔는데 치료도 안 받고 집으로 간다고 합니다. 사회복지사가 좀 이 일을 잘 처리해 줬으면 해요”


“네, 감사합니다. 제가 한 번 만나보죠”.

그리고는 곧바로 환자 정보를 찾아봤다. 그러자, 수잔 할머니의 기록이 쭉 뜬다.

이미 여러 명의 사회복지사가 이 수잔 할머니를 만나서 상담을 진행했다.

사실 병원에 오는 이런 상황의 환자들 대부분은 똑같은 문제로 늘 온다.

그래서 별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똑똑똑, “헬로, 저는 사회복지사 굿네이버입니다. 잠깐 이야기해도 될까요?”

할머니는 병실 침상에 누워 쳐다보지도 않는다.


“사회복지사? 그런데 배가 너무 고파.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

수잔 할머니는 너무나 삐쩍 말라 있었고, 얼굴 한쪽에는 멍이 시퍼렇게 들어 있었다.

“그래요? 그럼 제가 먹을 것 좀 가져다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혹시 마실 것도 좀 드릴까요?”

“홍차면 좋지, 설탕 두 스푼에, 우유 좀 넣어줘”. 침상에 일어나 앉으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곧장 빠른 걸음으로 응급실에 있는 냉장고에서 샌드위치 박스를 가져다 드리며, 물었다.

“그래서요, 수잔 할머니, 어떻게 해서 응급실에 오게 되었어요
(so, what brought you to the hospital)?”

물론 이미 환자 기록을 살펴보고 왔기 때문에, 다 알고 있지만 모르 척 물었다.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데, 그만 미끄러져서 넘어졌지 뭐야, 그 뒤엔 전혀 기억이 안 나”

할머니는 퉁명한 소리로 대답을 하며, 여전히 말하기 싫다는 표정을 지으시고 계셨다.


“그런데 응급차는 누가 불렀어요?”

“몰라, 기억이 안 나… 아마도 내 친구가 부른 것 같아”.


“수잔 할머니, 집에 누구랑 같이 살아요 아니면 혼자 사세요?”

“혼자 살지, 5년 전에 남편이 죽고 줄 곧 혼자 살고 있지. 남자 친구가 있긴 한데 같이 사는 건 아니고…

아들놈 하나가 있는데, 안 본 지 꽤 되었어, 그놈이 좀 문제가 많아”.


“그런데 할머니, 샤워나 식사 이런 건 좀 어떻게 해결하세요? 혼자 할 수 있나요?”

뉴질랜드 보건부(Ministry of Health)에서는 샤워나, 청소 등 일상생활에 기본적인 활동이 잘 안 되는 분들에게 샤워 도우미나 청소 도우미를 보내주기 때문에,

사회 복지사의 주 업무는 이런 것을 환자가 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샤워야 혼자 할 수 있는데, 다리가 불편해서 화장실을 제때에 못 가.
그래서 바지에 똥도 싸고, 바닥에 똥을 흘리네…

창피해 죽겠어, 나이가 들어 청소도 못하겠어”


사실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해서 청소를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무너져 있어서 일상생활의 활동을 전혀 못하고 계셨다.

“그러면 식사는요?” 

“별 문제없어… 그냥 아침에 위스키를 우유랑 같이 먹기도 하고…”

“위스키요?, 술을 얼마나 자주 드세요?”

“자주 안 마셔, 그냥 매일 위스키를 우유랑 먹는 정도야”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술을 별로 안 마신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술’이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술을 마신다고 다 알코올중독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는 이유를 알아야만
중독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대화의 초점을  너무 ‘술’에 맞추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 혹시 예전에 무슨 일을 했어요?”

“나? 버스 운전했어. 한 30년 했지”

“정말요? 버스 운전을 30년이나 했다고요?

와우, 대단해요! 어떻게 한 직업을 30년이나 할 수 있어요?”


그 순간 할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뜻밖의 반응이라는 모습이다.

아마도 할머니는 내가 계속해서 ‘술’ 문제를 말할 것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할머니를 칭찬하기 시작하니 당황한 듯하다.


“그럼! 거의 평생을 버스 운전사로 일하면서 자식들 키웠지!”

“그러게요. 저는 지금 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 지 한 달째인데도 정말 힘들어 죽겠는데,

어떻게 한 직장에서 30년 동안 일을 하셨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이때부터 할머니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지어진다.

“정말요, 할머니는 제가 봐도 너무 특별한 사람 같아요!”

“뭐라고 내가 특별하다고? 나 같은 게 뭐….”

“아니에요, 병원에서도 할머니가 특별하니까 이렇게 아주 멋진 병실을 주죠. 병실 이름도 S1이잖아요? Special One!, Speical two도 아니고 Special one!!”

그 순간 할머니는 크게 웃으시며 엄청 좋아하신다. “맞아, 내가 아주 특별해!”  


사실 뉴질랜드 병원의 장점 중에 하나는 특실이 없다는 것이다. 환자의 상태나 상황에 따라 Side Room을 배정하기는 하지만 일반 병실과 특실로 운영하지는 않는다. 확실히 Side Room 배정 이유는 나로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대개 환자가 임종을 앞둔다거나, 가정 폭력으로 왔다거나 아니면 특별히 환자의 개인 보호가 필요한 경우에 배정을 한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수잔 할머니도 특별한 존재(?)인 것은 맞다?


할머니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 손을 붙잡고 말하신다.

“병원에 남아서 계속 치료받을게.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너 때문에 병원에 남아서 치료받고 싶어 졌어!”


정말로 너무나 기뻤다. 할머니가 생각을 바꿔 병원에 남아 치료를 받기로 했다는 사실이…

할마니의 마음이 바뀌는 기회도 주지 않고자, 곧바로 한 걸음에 의사한테 달려갔다.

“할머니가 병원에 남아 치료받겠데요! 바로 입원시킵시다!”


그날이 그 주의 근무 마지막 날이라서 며칠 후에 다시 직장에 돌아와 할머니의 치료 경과를 체크했다.

"혹시 바로 퇴원하셨나?" 하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할머니는 병원에 7일 동안 입원해서 모든 점검과 치료를 다 받고 퇴원하셨다.


사실 할머니는 어쩌면 자신이 더 이상 세상에서 가치 없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껴져서 그동안 자신을 방치해 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스스로 돌보지 않고 술을 마시고, 음식도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으며 자신을 망가트리며 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아무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는 자신은 병원에서 치료받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이 치료받으면 뭐 해...".


할머니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칭찬해 주고,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누군가의 그 한 마디에 큰 격려를 받으셨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단 한 마디는 그저 당신은 S1이라는 말 한마디 아닐까?


지난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특별한 존재들이다.

자식을 먹어 살리기 위해 평생을 바쳐 일해온 아버지들

자식을 키위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어머니들

그저 내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온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다 S1이다.


나는 그날 수잔 할머니를 만난 이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졌다.

나 스스로도 참 대견하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주는 축복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Recognizing the worth of others is acknowledging our own worth.
-  토마스 제퍼슨 (Thomas Jeff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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