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구경 중 우연히 한 공연장을 발견하고 공연 포스터를 구경하고 있던 차였다. 그때, 한 할머니께서 내게 손짓을 하신다. 다가가서 인사드리니, 다짜고짜 공연표 한 장을 손에 쥐어주신다.
내 옆에 있던 한 영국인도 그렇게 공짜표를 손에 쥐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나와 이름 모를 그 영국인에게 할머니는 연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자고 몸짓으로 재촉하신다. 그러한 할머니의 모습이 왠지 낯익다. 시골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인심 좋은 우리나라 할머니들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공연을 감상한다.
'야호! 신난다. 공짜 공연이다.'
영국인은 나와 할머니 사이에 자리했다. 할머니께서는 공연 내내 스페인어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신다. 문제는 나와 영국인 둘 모두 스페인어의 '스'자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 영국인은 할머니 옆에 앉은 죄로 못 알아듣는 스페인어를 알아듣는 '척' 쉴 새 없이 리액션을 취한다. 못 알아듣는 말을 알아듣는 척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고마운 영국인. 그가 아니었으면 내가 겪을 일이 리라.
공연은 어떤 작은 어촌에서 벌어지는 순박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로, 화려하면서도 흥미롭고, 또 생각 외로 박진감 넘친다.
공연의 한 장면. 매우 흥겹다. 할머니는 공연장 2층에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비록 배우들의 대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공연 장면 하나하나가 나에게 귓속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똑같이 언어의 한계를 느꼈던 작년 LA에서 본 '오페라의 유령'보다 이 공연이 훨씬 더 맘에 든다. 왠지 더 정겹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공연 후 몸짓과 손짓을 총동원해 감사인사를 드리니, 할머니는 흡족하신 듯 얼굴 가득 환한 미소로 답해주신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할머니에게서 우리의 '정'을 느낀다. 비록 말이 통하진 않지만 여기 멕시코 사람들이 보여준 친절은 내게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작지만 소중한 기쁨'이다.
공연표를 주시고 같이 관람한 할머니 외에도,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나선 길에 버스터미널까지 안내해 주신 분과 행선지 버스에 올라탈 때까지 도와주신 분도 있었다. 모두들 감사하다.
'자! 이제는 다음 목적지인 과나후아토(Guanajuato)로 간다.'
과달라하라에서 과나후아토로 이동해 저녁 9시 50분 도착한다.
(과달라하라 → 과나후아토) 버스로 5시간가량 걸린 듯하다.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이 정겹다.
이곳 과나후아토의 지형은 참 특이하다. 지상 1층은 마치 지하 차도처럼 활용되고 있으며, 건물로 말하자면 2층 높이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일전에 방문했던 미국 시애틀이 생각난다. 시애틀은 과거 대화재로 인해 지상 1층이 폐허가 되었으며,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된 그 폐허 위에 도로와 건물을 건설해, 원래대로라면 2층이었을 공간을 1층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런 점이 과나 후와 또 와 흡사하다.
과나후아토에 도착해 버스에서 혼자 덜렁 내린다. 막막하다. 그냥 지하차도 한가운데에 내린 느낌이다. 행인도 없으며 보이는 것은 오직 무심히 지나가는 차들 뿐이다. 한숨이 나온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한다. 한발 한발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위층에 다다르니, '우와' 하고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아담하고 예쁜 도시다. 지하차도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다. 감탄도 잠시, 숙소를 찾아야 한다. 지도를 보며 가이드북에 소개된 호텔을 찾아간다.
'이런', 문이 굳게 잠겨있다.
갈곳 몰라하고 있을 때, 길에서 꽃을 파는 분이 인근 호텔까지 안내해 주신다. 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한 호텔이다. 위치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수지맞았나 싶을 때, 느낌이 싸해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빨간 조명이다.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열쇠를 받아 들고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간다. 목재 계단이 삐걱, 삐걱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2층 복도에는 중세시대 철갑옷 기사가 호위라도 하듯 줄지어 서있다. 한 손에는 각기 도끼를 든 채. 철갑옷 기사를 지나쳐 방문 앞에 선다.
방문이 철문이다. 열쇠를 구멍에 넣어 돌리니 "철커덩" 소리가 난다. 마치 교도소에 입장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숙소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여장을 풀고 노천카페에서 휴식을 취한다. 그곳에서 멕시칸 '루쓰' 그리고 그녀의 동료, 일본인 '아야'를 만났다. 함께 야경을 감상하며 여행이야기를 나눈다.
루쓰와 아야와 함께 찰칵! 노천카페 분위기가 좋다.
이렇게 하루하루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 그들이 나의 여행을 윤택하게 하고 또 나에게 힘을 준다. 내일 아침 그들과 만나서 같이 관광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