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멕시코, 1999년 3월 8일
아침에 아야와 루쓰를 다시 만났다. 현지인인 루쓰와 동행하니 참 편하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다. 가끔은 내가 여행의 주체가 된 것이 아니라 이끌려 다닌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말이다.
과나후아토는 작고 시끄러웠지만 아름답고 로맨틱한 곳이다. 형형색색의 건축물들이 도시에 생기를 더해주는 듯하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탈리아의 로마와 비슷하다.
이곳은 예전에 은이 많이 발굴된 곳이라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은광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일부는 관광지로 운영되고 있다. 한 때 은을 제공한 은광이 지금은 그 수명이 다되어 관광지로 이 지역의 수익 창출에 도움을 주고 있다니,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은광’이다. 이렇게 관광지가 되어버린 한 은광을 방문한다.
은광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좁고 가파르다. 식민지 시절 아무런 보호장구 없이 은을 캐다 병들거나 죽으면 내버려졌다던 설명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은광을 방문한 후 미라 박물관으로 향한다. 많은 박물관을 다녀봤지만 미라를 전시해 놓은 곳은 처음이다. 세상 누가 이런 박물관을 생각해냈을까? 생각만 해도 으스스한 기분이다. 무섭고 왠지 꺼림칙했지만 신기한 것은 꼭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미라박물관의 시초는 비극을 담고 있다. 1800년대 콜레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어 공동묘지에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이후 공동묘지 매장세가 도입된다. 즉, 돈을 지불해야 시신을 매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임대기간 후 비용을 지불하지 못한 묘지는 파헤쳐졌고 이들 중 상당수의 시신이 미라가 되었다. 과나후와토의 건조한 흙으로 인해 시신이 썩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땅속에 묻히지 못한 시신들은 공동묘지에 딸린 한 건물에 보관되었고 일부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면서 미라가 된 시신들을 구경하기 시작한 것이 미라박물관 탄생의 시초다. 1969년, 과나후와토 시는 공식적으로 미라를 전시하기 위해 미라박물관(Museo De Las Momias de Guanajuato)을 개장했다.
세계에서 가장 작다는 아기 미라는 6개월의 태아다. '아기 미라' 어감은 귀엽지만 실제로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예쁜 옷을 입고 입는 아이들 미라는 박물관을 더 을씨년스럽게 만든다. 신기한 것은 죽은 사람의 몸, 즉 미라에서 아직도 털이 자라난다는 사실이다.
'털 나는 시체? 정말로 죽어 있는 것일까? 혹시 살아있는 것은 아닐까?'
미라를 배경 삼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도 왠지 뒷골이 쭈뼛해진다.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미라의 모습과는 반대로 박물관 곳곳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재치가 넘친다. 남자 해골이 여자 해골에게 프러포즈하는 모습, 신나게 춤추는 해골 등. 으스스하다가도 웃음이 나는 곳이다.
어느덧 해는 저물고 노을이 내린다. 미라 박물관을 둘러본 후 우리는 시내로 향한다. 시내에는 멕시코 커플들에게 인기가 많은 두 건물이 있다. 아주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이 두 건물은 멕시코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옛집이다.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한쪽 건물에는 가난한 집의 청년이, 그리고 다른 쪽 건물에는 부잣집의 처녀가 살았다. 두 건물이 워낙 가까운 덕에 그 둘은 매일 각자 집의 발코니에서 키스를 나눴다고 한다.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키우면서. 하지만, 어느 날 부잣집 여자의 아버지가 그 둘이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분개한 그 아버지는 다시는 가난한 집 아들과 만나지 말라고 딸에게 경고했다. 다시 또 한 번 키스 장면을 보게 되면 죽이겠다는 협박과 함께. 사랑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 둘은 여전히 사랑했고 또 키스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아버지는 결국 자기 딸을 죽이고 만다.
어쨌건 그런 비극이 발생한 후로 그곳은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미라박물관만큼이나 특이한 관광지다. 우리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근처 대학교의 젊은 남녀 커플들이 키스를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곳에서 커플이 키스하면 헤어지지 않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아주 왁자지껄 시끌벅적하다. 또 웃음이 가득하다. 역시 젊은이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순서를 정해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던 커플들은 나와 아야에게도 본인들처럼 키스하며 사진 찍으라고 손짓한다. 이윽고 환호성과 박수마저 동원하며 채근한다. 그런 무리들을 뒤로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이어 간 곳은 삐삘라 기념탑(Monumento al Pipila). 광부였던 삐삘라는 과나후아토의 유명한 독립투사로 스페인 군대를 무찌르는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 멕시코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립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갔다는 생각에 왠지 멕시코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진다.
기념탑을 내려와서 아야와 루쓰와 함께 저녁을 먹고 맥주 한 잔을 한다. 호텔 식당에서의 저녁식사. 화려한 장식의 밴드가 돌아다니며 식사하는 이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한다. 물론 돈을 내야 하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은 공짜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나는 음악, 좋은 친구들 그리고 멕시코산 맥주, 꼬로나. 오늘 하루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을 방문했다. 하루하루 기억에 남을 추억들이 오늘도 차곡차곡 쌓인다. 이런 추억들이 날 성장시키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