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첫날밤은 버스정류장에서

응답하라 멕시코, 1999년 3월 6일

by 긍정의 힘

마자틀란에서 '과달라하라(Guadalajara)'로 가는 길은 칠흑같이 어둡기만 하다. 간혹 작은 마을을 지날 때도 불빛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자틀란 → 과달라하라) 버스로 6시간 반 가량 소요되었다.

간간이 희미한 전등 불빛만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리고는 꼬불꼬불한 언덕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던 승객들이 하나둘씩 내린다. 그럴 때마다 왠지 불안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본다.


이제 승객이 대여섯만 남게 되었다. 제발 내리지 말아 달라고 사정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다. 칠흑 같은 어둠이 더욱 짙어질 때쯤 마지막 승객마저도 내렸다. 마치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서의 그 마지막 잎새처럼.

이제 버스 안에는 딱 두 명만이 있다. 나 그리고 운전기사. 말이라도 통하면 좋으련만. 처음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장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다. 바로 공포영화, ‘나이트메어’의 한 장면 같다. 깜깜한 산길을 프레디와 단 둘이 학교버스 타고 가는 바로 그 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gctSlXYSYDI

대략 이런 느낌이다. 나이트메어는 90년대 공포영화의 대명사였다.

불안한 마음에 미어캣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곳저곳을 주시한다.


그래도 무사히 목적지인 과달라하라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새벽 2시 20분.


‘숙소를 어찌할까?’


버스터미널 근처의 호텔은 비싸다. 그렇다고 택시 타고 시내에 있는 저렴한 호텔로 가자니 택시 값이 부담스럽다.


‘4시간만 버티면 되지 않을까?’

결국 난 이곳 버스터미널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무모한 선택이 아닐 수 없지만, 예산이 빠듯하여 이렇게라도 여비를 아껴야 한다. 애초에 이러한 모험을 꺼려했다면 이곳 멕시코로 여행을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아무도 없는 대합실의 한편에 긴 의자를 놓고 자리를 잡는다.


‘날치기라도 있으면 어쩌지?’하는 우려에 큰 배낭을 등에 멘 채로 누운 후 작은 가방을 가슴팍으로 가져가 꽉 움켜쥔다. 그리고 잠을 청한다.

한참 꿀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느낌이 든다. 눈을 뜨자 눈이 부시다. 한 현지인이 하늘을 가리키며 뭐라 뭐라 현지어로 말한다. "해 떴어. 이제 일어나야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해 숙소를 잡아 밀린 잠을 자고 오후 늦게 일어났다.

큰 배낭은 뒤로, 작은 배낭은 앞으로. 이 모습이 멕시코 여행 내내 이어진 내 패션이다.

본격 여행 첫날, 멕시코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 하나. 이곳 화장실 좌변기에는 변기 뚜껑이 없다. 주기적인 배변활동으로 매일 아침 큰 것을 보는 나는 공중화장실에서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급한 만큼 불가능은 없다. 다리에 힘을 주고 기마자세를 취한다. 엉덩이를 변기와 최대한 밀착하게, 그러나 닿지 않게 큰 것을 해결했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평소보다 더 시원한 느낌이다.


저녁에 식당에서 만난 멕시칸 커플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호기심을 보인다. 위치가 어디인지, 무엇이 유명한지 묻는다. 멕시코에는 한국인은커녕 아시안 관광객 자체가 드물다. 더군다나 일본, 중국에 비해 인지도가 부족해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그 커플은 내게 타코를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테킬라 마시는 방법도. 타코와 테킬라. 어울리지 않을 거 같지만 괜찮은 조합이다. 테킬라를 소주처럼 들이켠다. 기분이 좋아진다.


아직은 멕시코에 여행 왔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여전히 멕시코라는 나라가 낯설다.

타코와 테킬라. '소주와 삼겹살' 궁합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훌륭하다.
식당에서 만난 멕시칸 커플과 찰칵! 한국인은커녕 아시안 관광객이 거의 없기에 항상 주목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