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뜻하지 않게 고3 딸의 전담 대학입시 컨설턴트 역할을 해오고 있다. 딸은 무슨 연유인지 지원대학 선정, 자기소개서 작성, 수능 입시 전략 등 중요한 결정에 있어 항상 아빠의 의견을 듣고 논의하여 결정한다.
그 시초는 아마 고등학교 선택부터인 것 같다. 3년 전 고등학교 선정을 앞둔 시기, 딸과 나는 무려 두 달여간 어느 고등학교에 진학할지에 대해 열띤 논쟁을 했다. 물론 최우선 고려사항은 딸이 초등학생 때부터 꿈꾸었던 목표의 성취 가능성 여부다.
나는 과학고를 시작으로, 국제고, 외고, 자사고, 그리고 일반고의 장단점을 분석해서 딸에게 브리핑했다. 아마 족히 10회 이상 한 것 같다. 딸의 로망은 멋들어진 교정을 갖춘 고등학교에 진학해 기숙사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목고 진학이 필수였다.
하지만 본인의 꿈을 위해 딸은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했고, 결국 가장 탐탁지 않아했던 일반고에 진학하기로 했다. 그것도 지방의 일반고. 사실, 일반고는 아빠인 내가 가장 선호했던 선택지였다.
딸과 헤어지지 않고 함께 계속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딸과는 달리 나는 아직 떨어져 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덕분에 아직도 딸과 함께 사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일반고 진학 후 첫 시험에서 딸은 생각보다 저조한 성적표를 받고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며 오히려 아빠를 안심시키던 딸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더욱 노력하여 고3인 지금 나름 만족할 만한 성적으로 수능을 앞두고 있다. 자기주도 학습을 습관화한 덕이었다.
이런 딸이 고3이 되자마자 아빠에게 대학입시 컨설턴트 역할을 떡하니 맡긴 것이다. 부담스러웠지만 딸이 준 임무를 소홀히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아내는 늦은 나이에 공무원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렇게 딸과 아빠가 한 팀이 되어 소위, '재수는 없다'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우선 대학 입학 절차부터 이해해야 했다. 참고로 나는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인 93학번이다. 당시에는 대학교 지원 기회가 단 한 번뿐이었다. 일단 떨어지면 그 순간 대부분이 재수생 생활로 직행하는 그야말로 '단두대 매치'였다. 그렇기 때문에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상향 지원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이런 내가 현 대입시스템을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유튜브에서 입시 관련 채널을 섭렵하는 한편, 회사 도서관에서 입시 관련 책도 여러 권 빌려봤다.
그제야 '수시'와 '정시' 차이가 이해됐으며, '수시'에는 '학생부 종합전형'과 '학생부 교과전형'으로 나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수시 납치'라는 센스 넘치는 용어를 제대로 이해한 것도 그 때였다.
대입 절차에 대해 이해하고 난 후 딸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 명단을 만들었다. 지방 일반고의 이점을 살려 지역인재로 갈 수 있는 학교를 우선순위로 명단을 추렸다. 대학입시박람회에 참석해 입시관계자들과 면담하며 합격 가능성 여부를 타진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든 명단에는 지원학교별 수능 최저 등급, 최근 2년 내신 컷, 일반고 출신 합격 경향, 자기소개서 유무 등의 정보가 정성스럽게 담겨 있다. 이런 명단은 매달 수정되어 최종적으로 '버전 8'까지 나왔다.
딸의 내신성적에 따라, 그리고 미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가 추가됨에 따라 업데이트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은 원서접수 당일날까지도 이어졌다.
자기소개서 작성도 큰 노력이 들어간 작업이었다. 컨설팅 업체에 대한 유혹도 있었으나 구체적인 경험 및 진실성 있는 자기소개서를 위해서는 스스로 작성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딸과 둘이 한 팀이 되어 작성했다. 물론, 컨설팅 비용이 고액인 점도 한 이유였다.
우선 학교생활기록부를 딸과 함께 꼼꼼히 살펴본다. 생기부에 적시된 사실만을 기재해야 자기소개서의 진정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딸과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소위 어필할 만한 소재를 찾는다. 이후 구체적인 경험을 살려 딸이 초안을 작성한다.
초안을 다듬어 문장을 매끄럽게 하는 것은 내 몫이다. 이렇게 작성된 자기소개서를 학교 선생님께 가져가 조언을 구한다. 그리고는 수정. 이러한 작업을 수차례 반복한 끝에 자기소개서를 완성했다.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재수는 없다' 프로젝트는 진행 중이다. 수능까지는 이제 앞으로 한 달. 수능 후에는 면접이 기다리고 있다. '재수는 없다'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 수능 후 딸과 면접 연습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테블릿을 켜고 유튜브에 접속해 대학 입시 면접에 관한 공부를 한다. 다가오는 12월 모든 학교의 지원 결과가 나와야 이 프로젝트가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