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오래간만에 아내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이야기를 한다. 리액션의 대가인 나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등장인물에 빙의되어 희로애락을 느낀다.
단순히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표출한다. 우렁차게 웃기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화내기도 한다. 그러기에 아내와 나의 대화는 항상 시끄럽다. 인정한다. 나는 시끄럽다. 그러길 20여분.
날카롭고 파괴력 높은 목소리가 지금 막 나온 아내의 목소리를 흔적도 없이 지우고 내 귀에 꽂힌다.
“시끄러워, 조용히 해!”
“나 내일 시험이야.”
그건 고요함을 강요하는 주술이자 거부할 수 없는 협박이다. 나와 아내는 그 즉시 입을 다문다. 1초의 망설임이란 있을 수 없다.
대신 손짓으로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반항한다. 난 주먹을 쥐며 딸의 방 쪽을 향해 꿀밤 때리는 시늉을, 아내는 딸의 방문을 향해 날카로운 레이저를 쏜다.
하지만 그뿐이다. 우린 딸의 한마디에 완전히 제압당한다. 이러한 고3 딸의 횡포와 억압은 비단 우리 부부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중3 아들도 희생양의 대열에 동참한다.
한창 친구들과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다가도, “야, 조용히 해!, 당장 안 꺼?”라는 말 한마디에 아들은 반항 한번 못한다.
기죽은 아들은 같이 게임하는 친구들에게 먼저 나간다는 인사를 남기고 바로 컴퓨터를 끈다. 제 누나보다 15cm는 더 큰데도 꼼짝 못 한다.
그런 날에 아들은 대들기라도 하듯 작지만 또렷하게 말한다.
“내가 수험생이 되면 두고 보자. 나도 막 뭐라고 할 거야.”
하지만, 임팩트가 없다. 딸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분명 들렸을 텐데 대꾸도 없다. 마치 체급이 달라 전혀 상대가 안된다는 듯이.
비록 이렇게 지금은 우리 집의 무법자지만 딸은 누구보다 고맙고 대견한 아이다.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부부는 맞벌이였다.
일찍 출근하는 부모 대신 딸은 세 살 터울 동생의 어린이집 버스 승하차를 담당했다. 매일 아침 8시 반에 딸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사리 같은 동생의 손을 잡고 동생을 어린이집 버스에 태워 보냈다.
그러고 나서야 어깨에 맨 가방을 고쳐 메고 딸은 등굣길을 재촉했다. 친구들은 여전히 엄마 손을 잡고 등교하던 때였다.
그런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다고 중학생이 되어서야 말해줘서 알았다. 항상 씩씩해 보였던 딸이었기에 나는 적잖이 놀랐고 마음 한편이 짠해졌다.
물론 하교 후 오후에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리는 동생을 맞이하는 것도 딸의 몫이었다. 그러곤 집에서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동생에게 초간단 샌드위치 등을 만들어주며 동생의 허기진 배를 달래준 이도 딸이었다.
그런 딸이자 누나이기에 고3의 무법자 행세가 밉지 않다. 더군다나 그 이유가 본인이 희망하는 학교에 진학하기 위함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 희생양들은 오늘도 기꺼이 무법자의 횡포를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한마음으로 바란다.
'수능아, 빨리 끝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