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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의 힘 Oct 22. 2021

밀려버린 우선순위

"아빠, 아빠가 왜 박사학위를 하고 싶은지 1년 동안 생각해봐"


어째 이상하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뒤바뀐 듯하다. 이 말은 작년 가을, 40대 중반을 넘긴 아빠에게 당시 고2였던  딸이 해준 말이다.


나는 만으로 43세였던 2018년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감사하게도 회사의 지원을 받아 업무와 연관 있는 분야의 공부를 한 것이다.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늦깎이 학교생활은 재밌었다.


거의 20세 가까이 어린 같은 과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냈으며 공부 또한 매우 즐거웠다. 물론 힘든 시기가 없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축복처럼 느껴져 그러한 부분마저도 감사했다. 고등학교 내신 10등급 중 9등급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40대 미국 석사'는 내게 꿈에서조차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학교 생활이 끝날 즈음, 난 미국에서 박사학위에 대해 진지하게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박사학위를 권하는 주변 교수님들도 계셨고, 무엇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아이들도 미국에서의 학교생활을 지속하고 싶어 한 것도 마음의 갈등을 키웠다. 하지만, 박사학위를 위해서는 휴직을 해야 하고 학교에서의 월급으로 네 식구가 생활하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엑셀에 비용을 계산해 정리해봤다. 박사학위를 위해서는 집을 처분해야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즉, 운 좋게 4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아도 그때는 빈털터리 신세가 되는 것이다.

<석사 학위를 받은 미국 학교 풍경>

여기에 생각이 미치니 미국에서의 박사학위를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온 우리 가족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근무하는 회사의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해 우리 가족은 생소한 지방에서 터전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새로운 곳의 삶에 익숙해진 작년 가을, 나는 또다시 박사학위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혔다. 마침 인근 대학교에 공부하고 싶은 과도 있었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가능했다. 그때라도 지원해야 만 50세에 학위를 딸 수 있다는 조급함도 한몫했다.


이번엔 딸이 마음에 걸렸다. 몇 달 후면 고3이 되는 딸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아내는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시험이 있어서 당시 두 아이의 뒷바라지는 오롯이 내 차지였다.


퇴근 후, 주방을 꽉 채운 설거지 거리와 큰 언덕을 이룬 빨래를 해치우고 온 집을 쓸고 닦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거기에 일주일에 두 번, 딸의 학원 등하교까지 책임져야 했다.  


이런 아빠가 박사학위를 하고 싶다며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안건은 다음과 같았다.

아빠가 박사학위를 해도 되는지

한다면 언제가 좋은지


첫 번째 안건은 만장일치로 '오케이'였다. 문제는 두 번째 안건. 두 번째 안건을 결정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머리를 맞대고 중요 우선순위를 매겼다. 사실 그럴 필요 없이 순위를 매기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딸 대입 준비 < 아내 시험 준비 < 아빠 박사학위 도전 < 게임에 열중인 중학생 아들 뒷바라지]


우리 집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우선순위에서 완벽히 밀린 것이다. 일리가 있는 결과다. 수험생 두 명의 뒷바라지가 우선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나는 박사학위 도전을 다음 기회로 또 미뤄야 했다.


앞으로 1년 후, 딸과 아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를 손 모아 기도한다.


그때도 지금의 열정이 살아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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