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에서의 국제 축구시합 한판!

응답하라 멕시코, 1999년 3월 12일

by 긍정의 힘

캐나다, 영국, 우루과이 친구들과 '뚤룸(Tulum)'에 있는 마야 유적지를 방문했다.


뚤룸,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곳이다. 말 그대로 파란색의 그라데이션을 뽐내며 반짝이는 해변과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마야인이 남긴 유적지가 만나는 곳. 게으른 이구아나가 누워 쉬는 곳. 살에 스치는 산뜻한 바람까지. 완벽한 조화다. 무엇으로 이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설명할까? 파라다이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1999년의 뚤룸>
<2018년에 다시 찾은 뚤룸의 같은 장소 다른 각도의 사진. 역시 화질이 1999년 사진과 비교할 수 없다.>

‘마야’, 많이 들어본 단어지만 실제로 마야 유적지를 방문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가이드가 없어 유적지의 각 건물의 용도를 알 수는 없지만, 그 오래전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놀랍다.


또 하나, 마야 유적지만큼이나 날 놀라게 한 일이 있다. 주위에 나체로 활보하는 사람들이다.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응시하며 멍하고 있던 차에, 물속에서 나오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 목적 없는 시선이 그녀를 따른다.


머리에서 시작해 어깨와 상반신을 드러낸 그녀는 거침없이 물속을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허리선을 따라 하반신까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그녀.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진정한 문화충격을 느끼는 순간이다. 하지만 티를 내선 안된다. 그러면 너무 경박해 보일 것이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다. 주위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과 한가로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주위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자연스럽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나. 탈의실이 따로 없는 해변가 한가운데에서 나도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며 이들의 나체 체험에 동참한다.


다만 차이라면, 내게는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옷을 벗고 수영복 집어 들기까지 마음이 굉장히 조마조마하고 다급해진다. 이렇게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일 하나하나가 모두 신기하고 흥미롭다.

<1999년의 뚤룸 해변가>

친구들과 그렇게 여유를 만끽하던 차, 한 유럽인이 다가와 우리에게 제안한다. 축구 한판 어떠냐고.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우리는 그림과 같은 해변에서 국제 축구시합을 했다. 한국, 영국, 캐나다, 우루과이로 이루어진 우리 팀과 이탈리아, 멕시코, 스위스, 미국 등으로 이루어진 상대팀과의 경기였다.


이름하여 '한-영-캐-우' vs. '이-멕-스-미' 전

비록 경기에서 졌지만 기억에 남을만한 좋은 추억을 하나 더 쌓았기에 흡족하다. 세계 각국에서 온 청년끼리 같이 부딪히고 땀 흘리며 운동 경기하는 모습. 상상으로만 그리던 일이었다. 기분 좋은 기억을 안고 뚤룸을 떠난다. 아름다운 추억과 좋은 친구들을 뒤로한 채.


원래 캔쿤을 방문하려 했으나 뚤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캔쿤은 제2의 미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국인 관광객으로 가득 찬 곳이라며 한사코 만류한다. 캔쿤은 단지 큰 휴양 도시일 뿐이라며.


귀가 얇은 나는 즉석에서 계획을 또 한 번 수정한다. 다음 여행지로 캔쿤을 건너뛰고 말로만 듣던 피라미드의 도시, '치첸이사(Chichen Itza)'로 결정한다. 치첸이사로 가기 위해선 '바야돌리드(Valladolid)'를 경유해야 한다. 저녁 6시 발 버스다.

<쁠라야 델 까르만 → 뚤룸 → 바야돌리드 이동경로>

저녁에 도착해서 어렵지 않게 숙소를 잡았다. 바야돌리드에서의 숙소는 방도 넓고 가격도 저렴하다. 굳이 문제점 하나를 들자면 바퀴벌레. 곤충이 아닌 동물 수준에 가까운 크기의 바퀴벌레를 두 마리나 잡았다. 방 안에서 발견한 바퀴벌레를 휴지로 싸서 집어 들어 손을 꽉 쥐었다. 아직도 그 느낌이 손바닥에 생생하다.


"우지직, 우지직" 어딘가에 또 있을 곤충, 아니 동물을 경계하며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