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 피라미드 속의 피라미드!

응답하라 멕시코, 1999년 3월 13일

by 긍정의 힘

드디어 말로만 듣던 치첸이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피라미드를 마주한다. 치첸이사는 고대 마야의 수도이자 마야 문명의 중심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웅장하고 정교한 유적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유적지는 바로 엘 카스티요(El Castillo), 또 다른 이름은 '쿠클칸'의 신전(Castillo de Kukulcan). 쿠클칸은 마야의 신으로 깃털이 달린 뱀신이라고 한다.

<'엘 카스티요', 성채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스페인 군대가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놀랍다'라는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 상투적이지만 어쩔 수 없다. 놀라울 정도로 경이롭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1050년에서 1300년(브리태니커) 사이에 지어졌다고 하니 그 시대를 감안한다면 더욱 놀랍다.


이 피라미드 신전의 사방에는 계단이 있다. 한 면의 계단은 91개, 사방이니 총 364개의 계단이다. 그리고 건축물 맨 꼭대기의 신전까지 포함하면 총 365개의 계단이 된다. 양력으로 1년, 즉 365일을 상징한다. 그 당시 마야인의 천문학 수준이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랐음을 증명하는 수치라고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유다.


피라미드로 올라가는 계단은 가파르다. 30미터를 오르기 위해서는 네 발로 걸어야 한다. 어진간한 강심장도 직립보행으로 계단을 오를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피라미드 등반 도중 아래를 내려본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시작하여 바닥까지 이어진 두꺼운 동아줄을 생명줄처럼 잡고 오른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유적 보존을 위해 피라미드 등반은 2008년부터 중단되었다고 한다.>

한 번에 오를 수 없어 중간에 몇 차례 계단에 앉아 한숨을 돌린다. 그렇게 15분쯤 지났을까, 피라미드 정상에 다다른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서 주위를 감상한다. 사방 시선 끝까지 시원하게 뚫려있다. 어떠한 건축물도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하늘과 맞닿아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신전이구나.' 바람이 시원하다. 그렇게 한참을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머물며 세상 위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피라미드 정상에서 휴식을>

피라미드에서 내려와 다음 볼거리를 찾기 위해 주위를 서성거린다. 그때 내 시선이 피라미드 한쪽 면에 꽂혔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사람들이 피라미드 내부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호기심에 한걸음에 달려간다. 피라미드 지면 위 한쪽 면에 문이 나 있고 사람들이 그 통로를 통해 피라미드 내부로 드나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도 '피라미드 속의 피라미드'를 탐험한다. 통로는 한 사람이 드나들 정도로 좁았으며 한증막 같이 후텁지근했다. 바람이 거의 통하지 않을 정도로 사방이 돌로 꽉 막혀 있기 때문이다.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숨쉬기가 불편하다. 마치 어린 시절 무령왕릉 내부를 들어가는 기분이다. (참고로 무령왕릉 내부는 1997년 11월까지 내부 관람이 가능했다.)


바깥쪽의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안쪽의 피라미드에도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내 머릿속엔 온통 '어떻게 이렇게 만드는 것이 가능했을까?'란 의문뿐이다.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면 작은 방이 나온다. 그 방안에는 차크물(Chacmool)이라는 조각상과 재규어 모양의 왕좌가 놓여있다. 당시의 왕이 실제로 왕좌를 사용했는지 여부는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왕좌를 관람하니 답답함이 더해지는 듯하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피라미드 내부에서 나온다. 공기가 한결 상쾌하고 맛있게 느껴진다. 막 한증막에서 나온 기분이다. 엘 카스티요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여러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예전 우리나라의 첨성대처럼 별을 관측했다던 곳도 있고 심지어 축구장과 유사한 경기장도 있다.

<피라미드 내부. 차크물과 그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재규어 왕좌(좌), 내부 통로 안(우)>

축구경기는 풍요를 기원하는 일종의 종교의식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패한 팀이 아닌 승리한 팀의 주장은 참수되어 스스로 제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제물이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로, 패자보다는 승자가 신에게 바치는 제물에 더 걸맞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건축물들에 새겨진 문양도 눈길을 끈다. 특히, 사람의 심장을 재규어가 발톱으로 쥐고, 독수리가 쪼는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재규어와 독수리가 사이좋게 사람의 심장을 발톱으로 찢고 부리로 쪼고 있다..>

한나절을 유적지에 머문 후 숙소가 있는 바야돌리드로 돌아왔다. 놀랍게도 그곳에서 쁠라야 델 까르멘에서 만났던 스위스 여성 3명을 우연히 다시 만났다. 두 명은 친구 사이고 나머지 한 명은 그중 한 명의 엄마다. 그들과 함께 밤에 '소칼로(zocalo)'에서 마야 전통 춤을 감상했다.


내가 멕시코를 부러워하는 것 중 한 가지가 바로 이것, 소칼로다. 멕시코의 모든, 최소한 내가 방문한 도시에는 시내 한가운데에 공원을 겸한 광장인 소칼로가 있다. 차가 다니지 않는 곳으로, 가족부터 연인 그리고 친구들로 항상 북적인다. 난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꼭 소칼로에 들른다. 그 순간만큼은 현지 사람이 되어 그들과 일상을 함께 하기 위해서다.

<소칼로에서 펼쳐진 공연>

소칼로는 단순한 휴식공간만은 아니다.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 체험하는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전통 음악 연주 및 춤 공연 그리고 댄스파티까지, 제각각 특색 있는 공연이 소칼로를 찾는 이들을 맞이한다. 그날 찾은 소칼로에는 마야 전통 춤이 공연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본인이 마야의 직계 후손이라고 소개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나와 스위스인들에게 마야 문화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해줬다. 그를 통해 공연 중인 춤이 기우제임을 알게 되었다. 독특한 의상을 입고 화려한 깃털로 치장한 사람들이 춤을 추고 마야 언어를 구사하며 비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와 스위스인들은 흥겨운 마음으로 마야 춤을 감상했다.


하지만 그 마야 후손인은 알까? 마야 전통 춤보다, 그 문화를 외부인에게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려 최선을 다해 설명해준 그의 태도가 더욱 감동적이었다는 것을. 그는 자기 나라 그리고 자기 조상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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