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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의 힘 Dec 09. 2021

어느 중3의 인생 첫 투자

중학생의 생생 투자 체험

"아~~~빠~~~"


퇴근하고 오자마자 중3 아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아', '빠'. 이 두 글자에 리듬이 실리고 살짝 콧소리가 묻어난다.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내일 강남에 갈 수 있는지 묻는다. 구체적인 목적지는 강남에 있는 나이키 매장이다. 카카오맵을 켜고 검색한다. 집에서부터 110km, 운전시간은 2시간 20분 정도의 거리다.


아들은 나이키 운동화 응모에서 당첨이 되었다고 한다. 정확히는 운동화 당첨이 아닌, 운동화를 살 수 있는 '권리'에 당첨된 것이다. 제품도 아닌 제품을 살 수 있는 권리에 당첨이라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묻자 한정품으로 조금씩 풀리는 제품이기 때문이란다. 제품의 가격은 119,000원. 운동화를 거래할 수 있는 중개 플랫폼에서 매수대기 가격은 350,000원. 가격 차가 231,000원이다. 즉, 제품을 사자마자 두 배 이상의 가격에 팔 수 있다는 것이다.


즉시, 아들과 협상에 들어간다.


"아들, 아빠가 운전해주고 저녁까지 사주겠다. 대신 네 돈으로 사고, 되파는 경우 마진의 절반을 넘겨라."

그리고는 덧붙인다.


"이 투자의 판단은 네 몫이다."


아들은 절반이라는 말에 쉽사리 결심하지 못한다.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다 싶다. 아들은 마진의 20%를 역제안했고, 우리는 두세 차례 실랑이 끝에 마진의 30%에 합의한다.


다음 날, 오후 반차를 내고 아들을 태워 강남으로 향한다. 운전하는 동안 아들과 경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이 전세와 월세의 차이를 묻는다. 누가 전세를 선택하고 월세를 선택하는지 등 궁금한 게 많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점에서 아는 대로 설명해준다. 월세 대비 전세자금 대출 비용, 부동산 투자심리 등이 그러한 선택의 주요 배경이라는 것도.  


그러다 주제가 가상 자산으로 옮겨간다. 가상화폐부터 가상부동산까지, 서로 주워들은 정보에 본인의 의견을 더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정답은 없다. 다만, 이러한 대화를 통해 향후 아들이 겪을 투자에서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이런 바람에 나는 종종 아들에게 내 투자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경험담이라고는 하지만 실패담에 더 가깝다. 주식, 부동산, 그리고 심지어 가상화폐까지 성공과 실패 사례를 가감 없이 이야기해준다.


성공사례에서 아들은 "오~~~" 하며 감탄사를 내뱉다가 실패사례에서는 "아~~"라며 깊은 탄식을 하기도 한다. 평소보다 아들의 표현력이 풍부해지는 순간이다.


아들과 신나게 대화를 하니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운전한 지 2시간이 조금 지나 나이키 강남점에 도착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강남에서는 운전하는 게 아니다. 다음부터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리라 마음먹는다.


매장에 들어서 당첨된 운동화를 사러 왔다고 하니, 따로 안내해준다. 왠지 VIP가 된 기분이다. 당첨안내 문자는 물론이고 신분 확인을 위해 여권까지 검사한다. 매우 철저하다.


제품값을 지불하기 위해 아들이 본인 명의의 직불카드를 꺼낸다. 현금 또는 본인 명의의 신용/직불카드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제 용돈이 들어있는 계좌에서 119,000원이 빠져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은 한 켤레의 운동화를 손에 쥔다.


아들의 얼굴에 미소가 환하게 번진다. 상자에서 운동화를 꺼내보니, 디자인이 조금 독특한 것 빼고는 매장에 비치된 여느 운동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들은 그 운동화를 보며 연신 예쁘다며 감탄한다. 잠시 본인이 신고 다닐까 갈등하다가 이내 되팔기로 다짐한다.

<일반 운동화와는 디자인이 독특하다.>

아들이 중개 플랫폼에서 같은 모델의 운동화 가격을 확인한다. 340,000원. 1만 원이 내려갔다며 아쉬워한다. 어쩔 수 없다. 그게 투자인 것을. 그리고 그다음 날, 다시 가격을 확인한다. 350,000원이다. 처음 본 가격으로 회복되었다. 아들이 말한다.


"아빠, 다시 350,000원이 됐어. 지금 팔까? 팔아야 할 거 같아."

"그래, 물건이 더 풀리면 내려갈 수도 있고 원래 원했던 투자수익이 났으니 팔자."


그렇게, 아들은 운동화를 손에 쥔 지 3일 만에 우체국에서 운동화를 택배로 떠나보냈다. 택배비는 상자값 포함, 4,900원. 이제 나와 아들, 즉 투자자 간 정산의 시간이다.


350,000(매도가) - 119,000(매입가, 아들 부담) - 4,900원(택배비) =  226,100원(수익금)

아들 몫 = 226,100 × 70% = 158,270원

아빠 몫 = 226,100 × 30% = 67,830원


매우 성공적인 첫 투자다. 아들은 3일 만에 투자 대비 무려 133%의 투자수익을 올렸다. 나도 아쉽지 않다. 기름값과 저녁식사 값은 배당수익으로 충당하고도 남는다.


아들에게 수익금 전부를 다 줄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이렇게 좋은 경제 교육이 또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에 과감히 처음 약속한 대로 투자 수익금을 배정받기로 했다.


학교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생생한 경제 교육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아들은 부디 '원칙도 소신도 없는 투자'를 자행한 제 아빠의 전철을 밟지 않고 현명한 투자자가 되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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