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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의 힘 Sep 18. 2022

실천하지 못할, 좋은 대인관계 조건

20년 차 회사원의 넋두리

이 글은 넋두리다. 회사생활 20년이 가까워지는 두 아이를 둔 40대 후반의 한 평범한 직장인의 넋두리.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활동 분야가 다양해질수록 대인관계가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특히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일해야 하는 회사는 더 그렇다. 입사 초기, 좌충우돌하면서도 막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선배들의 이쁨을 받았다. 이후 어엿한 한 구성원으로 팀에서 제법 일을 해낼 때는 업무능력을 인정받으며 자존감이 뿜뿜한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덧 팀장이 된 지 3년이 훌쩍 지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막내라는 '버프 효과'도 없으며, 주어진 일만 잘하면 칭찬을 받는 팀원도 아니다. 팀 내부는 물론, 다른 팀 나아가 다른 부서와의 관계도 두루 살펴야 한다. 타 팀 또는 부서의 일을 열심히 도와주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경우도 있으며, 또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소소한 갈등은 항상 존재한다. 이심전심으로 잘 풀릴 때도 있고, 가끔은 갈등이 표면 위로 드러나며 삐그덕거릴 때도 있다.  


내 의도와는 관계없이 상황에 따라 피해자가 되기도, 그리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물론 나는 피해자가 되는 것도, 가해자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특히 가해자가 되는 것은 더욱 싫기에, 행여나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고민하고 신경 써서 직원을 대한다. 그래도 가끔은 그 뜻이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회사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그 덕에 한 가정을 무사히 건사하고 있다는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한 직원으로서, 나는 내 일에 충실하고 싶을 뿐인데 말이다. 


일하다 보면 참 별의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특징이 가득한 선배와 상관도 있고, 반대로 저절로 존경심이 들 정도의 후배도 있다. 세상 쿨한 50대 선배도 있고,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꼰대력'을 보여주는 젊은 직원도 물론 있다. 인품이나 업무능력은 나이 또는 직급과 무관해 보인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내 평가가 지극히 주관적이며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내가 높이 평가하는 직원이 다른 이에게는 '그럭저럭 제 일만 할 줄 아는, 그다지 탐탁지 않은 직원'인 경우도 있고, 내가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라 하는 직원이 또 다른 이에게는 '나름 나쁘지 않은 직원'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나 또한 누구에게는 매우 훌륭한 직원일 수도, 또 다른 이게는 형편없는 직원일 수도 있다.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닌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대인관계를 위해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가치가 있다. 바로 인내심을 동반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다. 그 대상이 누구이던, 심지어 몰상식함의 전형이어도, 이러한 태도를 견지한다면 결코 나쁜 평가를 받을 일이 없다. 하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내 마음의 속앓이'를 동반한다. 해야 할 말을 못 하고 참다 보면 가끔은 '이러다가 화병이 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상대방이 하루 이틀 볼 사이가 아닐 때, 그리고 도저히 마음이 따라주지 않을 때 더욱 그러하다. 결국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중고등학생의 "어떻게 하면 서울대에 갈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하면 됩니다."라는 답과 같으며, 다이어터의 "어떻게 하면 살이 빠지고 건강해질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야식과 치맥을 멀리하고 꾸준히 운동하면 됩니다."라는 답과 같다.  즉, 모든 사람이 정답을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문제인 것이다.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면 높은 확률로 서울대를 갈 수 있다.>

'다른 직원과 갈등 없이 모두에게 인정받으며 나 스스로도 만족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끔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아직 내공이 부족하고 마음 수양이 덜 된 나로서는 아직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냥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주변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할 뿐이다. 창피한 얘기지만, 도저히 참지 못할 때는 뒷담화도 하면서 울분을 삼키고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라는 정답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나는 그래서인지 서울대 출신도 아니고 날씬하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나 자신이 싫지 않다. 절제된 범위에서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일종의 용기이며 그러한 면에서 나는 용감한 직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언젠가는 묵묵히 어떠한 풍파 속에서도 불평 없이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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