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주변의 상황을 보아 좋은 시기를 결정함. 또는 그 시기>
'인생은 타이밍',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다. 뭔가 중요한 일이 이뤄질 때, 그만큼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부자간의 대화도 바로 이 타이밍이 중요하다. "응", "아니" 등 평소에 단답형의 과묵한 아들이라면 이 기술이 특히 중요하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치킨, 피자 등 아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면 된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 대화를 시작하기는 수월하지만 지속성이 길지 않다. 물론 재정적 비용도 발생한다.
음식이 도착하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음식이 바닥나면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기껏해야 10분에서 20분 안팎인 듯하다.
더군다나, '먹을 때는 즐겁게'라는 말처럼, 아들이 듣기 싫어할 만한 주제로 무리하게 대화를 유도하다간 자칫 짜증만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 득보다는 실이 큰 것이다.
그러기에 이 같은 방식은 가벼운 주제의 가벼운 대화를 위한 용도로 적합하다.
그렇다면 깊이 있는 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타이밍'이다.
아들이 대화가 필요하다고 공감할 때, 본인도 속내를 표현하고 싶다고 느낄 때, 그리고 아빠의 심정을 이해할 때, 그때가 바로 '타이밍'이 무르익었다는 신호다.
이러한 타이밍은 애석하게도 자주 오지 않는다. 다만, 그 타이밍이 왔을 때 알아차리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젯밤에 딱 그런 타이밍이 왔다.
고1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날이다. 지난 4일간 아들은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시험을 치렀을 것으로 '추정' 된다. 그 기간, 최대한 아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불필요한 대화도 자제했다.
금요일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아들은 시험을 치르느라 미뤘던 게임에 열중한다. 보는 둥 마는 둥 인사한다.
아내로부터 아들이 다음 날인 토요일, 친구들과 어울려 롯데월드에 가고, 하룻밤 친구 집에서 잔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이에 대해 설명해주기를 바랐지만 아들은 게임에 여념이 없다.
아들이 잠시 게임을 멈추었을 때, 롯데월드 다녀와서 늦게라도 집에 돌아오라고 아들에게 얘기한다.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거니와 별다른 설명이 없어서다.
아들은 순간 당황하면서도 "응."이라고 답하고는 다시 게임에 열중한다.
그러다, 자정 무렵 아들이 갑자기 제 엄마에게 롯데월드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가기 싫어졌다고.
하지만, 이는 아들의 진심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하룻밤 외박을 못하게 하니 마음이 상해 아예 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아들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1단계: 대화 거부)
"왜 갑자기 가기 싫어졌어? 하룻밤 못 자게 해서 그런 거야?"
"아니야. 그냥 가기 싫어진 거야. 말하기 싫어." 역시 퉁명스러운 답이다.
(2단계: 대화 수락, 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닫힌 상태)
"아빠는 네가 친구들과의 여행 계획에 대해 사전에 얘기해줬으면 했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외박한다고 하니 걱정되고 불안하잖아."
"근데, 아빠는 일방적으로 하룻밤 자지 말라고 통보한 거잖아. 내가 사전에 말했으면 허락해줬을 거야?"
아들이 가기 싫어서가 아닌, 마음이 상해서임을 에둘러 표현한다.
(3단계: 마음을 열고 대화 시작)
"아빠는 네가 오히려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생각해. 네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대화를 통해서 해결해야지. '나도 안가'라는 식의 태도는 너와 나 모두에게 손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아들의 목소리가 누그러지며 자세를 고쳐 앉는다.
(4단계: 해결책 모색)
"아빠는 네 요청을 들어주고 싶어서 대화하는 거야. 그러려면 아빠도 그 이유를 찾아야 해. 우선, 아빠는 네가 아무런 설명 없이 외박한다니 걱정되고 불안해."
"그럼, 아빠의 불안감을 덜어주면 될까?" 아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5단계: 합의)
"그래. 네가 계획을 얘기해주고, 같이 가는 친구들의 연락처와 하룻밤 자는 친구 부모님의 연락처를 알려주면 걱정이 덜 될 것 같아."
"알았어. 그렇게 할게. 롯데월드에 도착할 때, 친구 집에 도착할 때에도 연락할게. 그리고 일요일 1시쯤에 집에 돌아올 거야." 아들이 차분히 설명한다. 얼굴이 환해진다.
(6단계: 아빠가 아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 '대화의 중요성')
"오늘 아빠가 일부러 차근차근 하나씩 설명하면 얘기해준 거야. 오늘 아빠랑 한 대화 잊지 마. 네가 원하는 게 있는데 상대방과 의견이 맞지 않으면, 우선 상대방이 왜 그러는지 파악해야 해. 그러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해. 협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기술은 언제 어디에서든 꼭 필요해."
(7단계: 아들의 인정)
"응, 그러네. 아빠 말이 맞네. 내가 미숙했어." 아들이 수긍하고 인정한다.
"당연하지, 고1인데 당연히 미숙하지. 아빠는 네가 완숙하기를 바란 게 아니야. 이렇게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빠와 대화하기를 원했던 거야.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간략하게 정리했지만, 아들과의 대화는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대화를 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한 것도 아니며, 큰 사건이 벌어진 것이 아니다.
다만, 그 타이밍이 왔던 것이다. 아빠와 아들, 부자간 진지하고 긴 대화를 이어갈 타이밍이.
비록 아들과의 대화로 새벽 2시가 다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지만 마음이 한결 가볍다.
평소에 해주고 싶었던 '대화의 중요성'도 아빠의 시각으로 충분히 설명해줬고, 무엇보다 아들과 여전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마음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