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용실 가는 게 이렇게 행복할 일?

by 도토리

얼마 전, 미용실에 갔다. 생각해 보니 나는 첫째 출산 전부터 해서 지금까지 간단한 커트 하러 두어 차례 간 것 외에는 미용실에 간 적이 없다. 첫째 임신을 21년 10월에 했으니 어림잡아도 약 3년 동안 머리를 자연인(?) 수준으로 내버려 둔 셈이다. 둘째 돌잔치만 하고 나면 미용실에 가야지 다짐을 했는데 짬이 안나 미루고 미루다 그 묵은 숙원 사업을 드디어 해냈다.


아기 낮잠 시간, 남편에게 아이를 맡긴 채 미용실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하고 싶은 머리 스타일을 제대로 정하지도 못했지만 어떤 머리를 해도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늘 아기들이랑 산책할 때 지나던 길인데 오늘만큼은 발걸음이 왜 이리 가벼운지, 하늘이 왜 이렇게 예뻐 보이는지. 철창 밖을 나와 오랜만에 세상을 마주한 죄수가 이런 마음일까 잠깐 생각했다.


미용실은 그냥 남편이 가본 적 있는 집 근처 미용실에 갔다. 그리고 미용사분께 미용실 가는 길에 후다닥 정한 사진을 수줍게 보여줬다. "히피펌이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머리였다. 나한테 안 어울릴 수도 있으나 망쳐도 어차피 육아 중이니 괜찮을 것만 같았다. 미용사분이 사진을 보더니 이건 히피펌 아니라 젤리펌이란다. 아무렴 어떤가. 사실 나는 그 어떤 머리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저 머리를 하고 싶었고 미용실에 가서 나만의 온전한 자유시간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했다.


평일에 노는 사람은 나뿐인 줄 알았는데 미용실에 제법 사람이 많다. 미용실에 온 지 무려 3시간이 지나서야 머리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오래 자유시간 누릴 마음은 없었는데...뜻밖의 호사(?)에 마음이 불편했다. (애엄마는 쉴 때도 아이 생각에 마음이 편치않구나) 머리가 끝나고 "감사합니다"라고 하자 미용사분이 "참 오늘 감사하다 몇 번 듣는지 모르겠네요. 감사할 일이 아닌데... 뭐가 그렇게 감사해요~"라고 한다. 내가 그 말을 그렇게 많이 내뱉었나 보다. 예전에는 미용실 가는 게 별거 아닌 일이었는데 요즘에는 잘 갈 수 없다 보니 이런 시간이 생겼음에, 또 내가 원하던 머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죄송해요. 오랜만에 자유부인돼서 너무 행복해서 그래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계속 몽글몽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하면 힙하게 보이죠?' 머리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던 미용사 분의 말씀에 팡 터져버렸다. '힙'이라는 단어와 '애 둘 딸린 아줌마'인 나와는 너무도 안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나에게 절대 있을 수 없는 단어 같다.


상술임을 알지만 두 미용사분이 칭찬샤워를 마구 해주시니 기분은 아주 최고조에 이르렀다. 미용실에 오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행복해서 머리를 망쳐도 상관이 없었는데 머리까지 마음에 들고나니 업된 기분이 아주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평소 내향인으로서 스몰톡을 즐기지 않는 나이지만 이날만큼은 계산할 때도 "오늘 덕분에 너무 힐링되었어요"라고 다소 낯간지러운 말까지 쏟아대고 미용실 밖을 나왔다.


집으로 가는 내내 미용실에서 들은 칭찬을 되새김질하며 남편과 아기들의 반응을 상상했다. 자꾸 배실배실 웃음이 나왔다. 이번 달부터 무급휴직에 들어가는 나로선 꽤 큰 지출이었지만 나에게 큰 행복을 주었으므로 꽤나 만족스러운 지출이었다. 자금사정은 나중에 생각해 봐야겠다. 어찌 되었건 지금 행복하면 됐다...! 육아를 하니 사소한 것에도 행복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육아는 나를 쌈닭으로 만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