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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사기꾼

이 사기극 성공할까?

by 도토리

"양배추 달아요" 그 한마디를 못하던 애순이가 시장에서 단돈 천 원이라도 싸게 받으려 흥정을 한다. 오징어손질을 하며 능청스럽고 억척스러운 애순이의 모습은 새침데기 문학소녀를 떠올리기 힘들다.

'아줌마'라는 단어는 나와는 영 거리가 먼 것이라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이 단어가 어째 나와의 거리를 점점 좁히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생각했다. 난 절대 아줌마가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내 성격상 남에게 허허실실 웃으며 먼저 잘 다가가지도 못하거니와 무언가를 부탁해 다른 사람을 번거롭게 할 바에야 맨땅에 헤딩하더라도 나 스스로 하는 게 마음 편한 쪽이고 갈등이 생기기 전에 회피하고 그 연을 끊어버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처럼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해 버려진 화장대를 집으로 옮긴다거나 영업하는 사람에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로 거절하거나 시장에서 터무니없이 깎거나 덤을 요구하는 건 나와는 멀다고 여겼다. 아빠가 기분 나쁠만한 말이나 행동을 해도 아무 말도 못 들은 것 마냥 밝게 있는 엄마가, 그 많은 집안일을 혼자 해내면서도 늘 에너지 넘치는 엄마가 참 무던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어쩜 나는 엄마를 이렇게도 안 닮았는지. 왜 나는 엄마와 달리 멘탈도 약하고 에너지도 적을까 늘 의문이었다. 자존심 센 나는 철면피 엄마 유전자는 단 1프로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즘은 엄마가 왜 그랬는지를 알 것만 같고 나도 조금씩 엄마처럼 되어가는 것만 같다.

아이가 마음에 맞는 친구를 사귀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았으면 해 괜스레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 엄마들에게 말을 건다. "몇 개월이에요?" 하고 K육아맘들의 대표적인 아이스브레이킹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집안의 냉랭한 분위기에 아이가 눈치 보거나 기죽지 않았으면 해서 남편과 다퉈도 아무 일 없던 것 마냥 밝게 행동한다. 예전 같으면 둘 다 입 꾹 다물고 장기간에 걸쳤을 냉전도 하룻밤 사이에 나의 사과와 함께 종전된다.
아무리 화가 나도 감정적인 언행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아이가 멀뚱히 나를 쳐다보는 눈이, 안 듣는 척 내 말을 다 듣고 기억하는 귀가 무서워서.
자취 6년+신혼 1년 도합 7년 동안도 해본 적 없는 나물반찬을 수시로 요리하고(물론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애들은 입도 안대지만) 아이들이 밝고 긍정적인 아이로 자랐으면 해서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도 툴툴거리기보다 '괜찮아 괜찮아 이 참에 청소하는 거지 뭐~'하며 태생이 긍정적인 사람이었던 것 마냥 행동한다.

육아를 해보니 우리 엄마가 원래 그랬던 사람일 수도 있으나 어쩌면 우리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되어야 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내 자식에게 긍정적인 삶의 태도, 부지런함, 정서적 안정 등을 가르쳐주고 물려주고 싶어서 아이들 앞에서 내가 본디 그런 사람인 냥 행동하고 이 돈 아껴 우리 애들 맛있는 거 먹이고 장난감 사주고 싶어 부끄럽지만 능청 떨며 흥정을 한다. 아마 엄마도 그랬지 않을까.

참 해보니 쉽지 않다. 요즘에는 이다음에 내가 죽고 나면 내 몸에서 사리가 나오는 거 아닐까라는 시답잖은 생각도 해본다.

내 체감상 나도 아직 나이만 서른 중반이지 몸만 큰 아이 같아서 울고 싶고 의지하고 싶고 자존심 굽히기 힘들 때가 많은데 씩씩하고 멋진 어른인 냥 참고 기다려주고 지켜주려니 속에서 천불 나고 속이 문드러진다. 내가 생각한 서른 중반은 어떤 일도 막힘없이 뚝딱해 내고 내면이 단단한 의젓한 어른인데 어째 나의 모습은 우당탕탕 쨍그랑 인가.

그래도 아무리 내향적이고 부정적인 모습, 불안과 걱정이 가득한 내 마음이 진짜 나일지라도 아이들에게만큼은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유쾌하고 당당한 엄마로 보이고 싶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 나도 아주아주 오래 그렇게 연기하며 아이들을 속이며 살 거다. 아이들한테 만큼은 완벽한 사기꾼으로 살겠다는 것이 육아에 있어 나의 가장 큰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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