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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파파충은 없나요?

억울한 맘충의 넋두리

by 도토리

F 감성 물씬인 나는 '오글거리다'라는 말이 생긴 후부터 내 말과 글이 너무 진지하진 않은지, 다소 낯부끄러운 것은 아닌지 눈치 보게 되었다. '오글거리다'가 내 진심과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 벽을 한층 쌓았다면 육아에 있어서는 '맘충'이란 단어가 늘 나를 옥죄인다.

아이를 재우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휴대폰뿐인 밤, 인터넷 속 글을 읽다 보면 마음이 콕콕한다. 고놈의 맘충 맘충... 나한테 하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뜨끔한다. 마치 물건 잃어버린 사람 옆에서 '혹시 날 의심하면 어쩌지' 하고 심장이 쿵쾅 거릴 때처럼.

읽은 글이 많다 보니 자동 방어태세다. 이래선 안돼, 저래선 안돼. 이건 맘충사례 1, 저건 맘충사례2 ...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이 너무 다른 사람 의식한단다. 남편은 웬만한 사람은 아기를 다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에이~ 그 정도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아기 키우는데 다 이해해."
"오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아. 인터넷에서 얼마나 욕하는데..."
남편은 식당이나 카페에서 아기가 먹은 주스와 과자봉지를 주섬주섬 내 가방에 도로 넣어 가져가는, 강아지 귀엽다고 가까이 다가가는 아이를 가로막는, 밖에서 물티슈로 대변을 처리를 하는, 카페 다른 테이블로 기웃거리는 아이를 막는 내 모습이 다소 과하다는 눈치다.
"오빠, 오빠가 만약 여자잖아. 맘충 소리 들어~"

그렇게 말 뱉어놓고 보니 너무 억울한 거다. 조심이란 조심은 내가 다 하는데 왜 '맘충'은 있고 '파파충'은 없나. 왜 세상은 아빠들에게는 관대한가. 이것 참 불공평하다. 생각해 보니 괘씸한 것이 아이의 부족한 부분에 있어서는 "애 엄마가 뭐 했나", "엄마가 너무 ~해서 애가 ~ 하다" 만물엄마론을 펼치면서 아빠가 조금만 육아 참여도가 높아도 "호호호... 우리 딸이 진이 아빠 같은 사람 사위로 데려오면 좋겠다. 진이 엄마 결혼 잘했네." "이야~ 박 과장 요즘 남편 표본이네!! 대단해!"라고 칭찬일색이다.

그 말이 힘입어 '최고의 남편이자 아빠'가 된 남편의 어깨는 한없이 올라가는데 나는 그저 남편 아침밥도 못 챙겨 보내고 살림과 육아를 겨우겨우 해내는 '못난 아내이자 엄마'가 된 것 같아 잔뜩 위축된다.

아이를 대함에 있어서도 아빠는 좀 더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 아이가 수저질을 아직 잘 못해도, 아직 기저귀를 못 떼고 있어도 '느그 어무니 뭐하셨노?' 소리만 듣지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소리는 듣지 않지 않는가. 그러니 아빠는 '괜찮아. 어린이집 가서 배우면 돼!' '괜찮아. 크면 다 돼!'를 외치며 어린이집과 시간이 흐르면 만사 다 해결된다는 태평 마인드다. 그 말만 믿고 내버려두었다가 어린이집 선생님의 콜을 받고 쩔쩔매는 건 오직 엄마뿐.

이거 뭐 연좌제도 아니고 엄마가 '맘충'이란 단어로 낙인찍혔으니 아빠도 마저 '파파충'으로 낙인 같이 찍어주자!라는 생각은 아니다. 그저 늘 육아의 비난과 짐은 오로지 엄마들인 것 같아 속상하고 억울하고 답답할 따름. 그냥 '패런츠충'(?), 아니다 이건 뭔가 어감이 이상하니 부모충, 엄빠충으로 부르면 좋겠다.

아니다 그냥 이 말 자체가 없어지면 좋겠다. 맘충이든 파파충이든 다 일종의 진상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냥 우리 엄마, 아빠라는 타이틀 빼고 진상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
이상 억울한 맘충의 넋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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