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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페인 노외식

외식을 했지만 한 것 같지 않아

by 도토리

아이를 낳기 전,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맛집 탐방'이었다. 내가 살던 지역은 흔한 프랜차이즈보다는 그곳에만 있는 개인 식당과 카페가 많아 늘 새로 생긴 따끈따끈한 맛집이 생기면 부리나케 달려가곤 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 맛집 탐방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대부분 감성 식당과 카페는 노키즈존이거나 줄을 서야 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더더욱 어렵다) 맛집 아니어도 좋다 그저 아무 곳에서라도 외식하자 해도 쉽지 않다.


첫 아이 10개월 무렵 우리는 제주도 2주 살기를 했었는데 그 2주 동안 카페는 1번, 식당은 10번 정도밖에 가지 못했다. 그마저도 갈 때마다 아주 대단한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것 같았다. 외식을 할 때마다 남편과 나는 우리만의 신호를 주고받으며 아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우선, 한 사람이 메뉴판 보고 주문할 동안 한 사람은 아이를 안고 가게 주변을 둘러본다. 음식이 나오면 아이를 앉힌 후 온갖 먹거리와 장난감을 코스요리처럼 하나씩 꺼내준다. 칭얼거리면 다음 간식, 칭얼거리면 다음 장난감... 준비한 모든 것들이 동이 나면 메뉴를 주문했던 사람이 먼저 일어나 아이를 데리고 가게 주변을 돌아다닌다. 식사가 끝나면 교대해서 다음 사람이 식사를 이어간다.


식당에서 혼자 간식 먹고 장난감 가지고 놀면서 얌전하게 잘 있는 아이도 있다던데 애석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상한 소리를 낸다던지 쥐어준 숟가락이나 컵을 떨어트리곤 했다. 밥 먹는 중간에, 커피 마시던 중간에 후다닥 짐을 챙겨 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외식은 늘 긴장되는 일이었고 즐겁지 않은 일이었다.

노페인 노외식.

고통 없이 외식은 불가능했다. 어느 날은 아이 데리고 돈가스집에 갔다가 남편과 나 둘 다 체해서 한동안 돈가스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 좋지 못한 경험이 하나 둘씩 쌓이고나니 아이가 둘 되고부터는 가족행사 외에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과거형인 이유는 첫째 33개월, 둘째 19개월인 지금은 조금 나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두 아이의 컨디션이 좋아야 하고 여러 간식거리가 준비되어야 하며 메뉴선택에 있어 한정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둘째의 무염식을 비교적 일찍 끝내고 예민했던 첫째가 자라면서 조금 둥글둥글해지자(그래봤자 둥근 사각형이다) 조금은 할 만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식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힘들다.

생선구이는 애들 뼈 발라주느라 정신이 없어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고기 역시 실컷 구워서 아이들 주고 남편과 내가 먹을라치면 아이들은 배부르니 장난치며 식사를 끝내고 싶어 한다. 이건 분명 아이들이 잘 먹을 거라고 예상한 메뉴(돈가스, 자장면 등)인데 입에도 대질 않아서 멘붕이 되는 날도 있다.

외식을 했음에도 나와 남편은 허기지다. 육퇴 후 라면을 끓이거나 냉동핫도그를 돌리며 말한다. '우리 다신 외식하지 말자'

노페인 노게인. 고통 없인 얻는 것도 없다고 그저 밥 하기 귀찮아 선택한 길인데 막상 하고 나면 고통뿐이니 '그냥 집에서 밥 먹을걸' 후회만 남는다. 우리 집에선 노페인 노외식, 고통 없는 외식은 없다.


뭐 이제는 좋은 뜻으로 받아들인다. 덕분에 식비 절감하고 집밥을 정말 많이 해 먹는다. 시어머니께서는 우리 집 쌀통 비워지는 속도에 놀라신달까.

그래도 언젠가는 가족들과 함께 주말이면 핫플 맛집을 찾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느긋하게- 그리고 평화롭게- 외식하고 싶다. 몇 년후에는 고통 말고 즐거움이 가득한 외식을 할 수 있길 간절히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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