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아 1순위 목표
현재를 사는 것.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 말은 쉬운데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 지 모르겠다. 늘 그랬다. 이럴걸 저럴걸 하며 지난 일을 후회하는데 시간 보내고 이러면 어쩌나 저러면 어쩌나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앞으로의 일을 걱정했다. 육아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첫째가 낮 기저귀를 뗐다. 머리로는 '아이가 준비되면 금방 뗄 거야. 기저귀 못 뗀 사람 봤어? 없잖아. 언젠가는 분명 가려. 부모가 조급해하면 안 돼. 기다려주자.' 해놓고는 말로는 아이를 채근했다. 특히 대변은 아무리 달래고 권유해도 아이는 끈질기게 기저귀 입고 하기를 원했기에 더더욱 걱정이 깊어져갔다. 나의 초조함과 걱정을 들키지 않으려 '엄마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줄게.' '괜찮아. 실수할 수 있어.' 하고 각종 미화된 말로 포장했지만 이미 내 표정과 말투, 행동은 내가 내뱉는 믿음의 말과는 전혀 달랐으리라.
이번에도 뱉는 말을 있는 그대로 지키지 못한 못난 엄마와 달리 아이는 또 엄마와의 약속을 지켜냈다. 세 돌도 가까워져 가고 여기저기서 기저귀 뗐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엄마의 불안이 내뱉은 말.
"진아 엄마가 마음의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줄게. 그래도 세 살 생일 지나면 변기에 응가하고 기저귀 빠이빠이 하는 거야. 알았지? 약~속~!"
"응. 엄마! 세 살 생일 지나면 변기에 응가 용기 내볼게."
정말로 아이는 생일 되기 일주일 전부터 기저귀 벗고 응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기저귀 벗고 응가하기 싫어서 대변 마려울 때 기저귀 입혀달라 하거나 낮에 팬티만 입히고부터는 밤잠 기저귀로 바꾸는 순간, 그러니까 자기 직전에 참았던 대변을 보는 아이였다. 언제 떼나 언제 떼나 했는데 한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내가 졌다. 결국 아이는 해내는데 내 믿음이, 내 인내가 늘 부족하다.
사실 요 며칠 도통 육아에 집중하지 못했다. 더운 날씨에 지친 탓일까, 육아번아웃이 다시 온 걸까. 어린이집 사정으로 둘째 가정보육 기간이 더 연장되어 기대했던 내 자유시간이 한 달 날아가버린 것에 대한 허망함 때문이었을까. 나의 관심과 집중이 아이들보다는 다른 것에 치우쳐있었다. 입으로는 아이와 놀고 있으면서 머리로는 딴생각을 했다. 아이들보다는 집안일이 우선이었다.
학교에서도 그렇듯 아이들은 내 마음이 어지럽고 정돈되지 않을 때를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그럴 때일수록 더 애타게 나를 찾고 보채고 서로 다툰다.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면 나는 또 언성 높여 화내고... 아이들은 또 울고... 악순환의 반복.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뿔싸! 내가 또 현재가 아닌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렸구나.
지금 이 순간, 인생 최고의 효도란 효도는 다한다는 3살, 4살 이 시간을 또 이렇게 다른 별 볼 일 없는 일들로 허망하게 지나쳐버리다니! 괜한 걱정과 정말 쓰잘데기 1도 없는 지나버린 일에 대한 후회로 귀하고 아까운 현재를 날려버리다니! 다시 다짐한다. 올해는 정말이지 아이들에게 듬뿍 사랑 주고 집중하며 보내야겠다고. 그 다짐과 함께 아이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하니 기분 탓인지 몰라도 두 아이 다 컨디션이 아주 좋다. 싸우지 않는 것은 아니나 사이가 꽤나 좋다. (물론 아직 백 프로 집중한 것 같진 않다. 여전히 집안일은 놓기 힘들다. 잠깐만 놓아도 초토화돼서 두세 배는 더 힘들어지는지라...) 첫째 방학 첫날, 나도 아이들도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아이에게 집중하니 같이 노는 놀이도 재밌고 여러 번 읽은 책도 각종 효과음과 성대모사를 곁들여 다른 방법으로 읽어주게 된다.
육아든, 인생의 다른 영역이든 항상 기억해야겠다. 현재에 충실하자. 지금을 살자. 가장 어렵고 가장 힘든 미션이다. 중간중간 삐끗하더라도 되도록 현재에 집중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아이들 걱정도 더는 말고... 늘 지나고 보면 뭐든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았는가. 때 되면 다 된다. 때 되면 다 한다. 친구들한테 조언만 그렇게 해주지 말고 나부터 그런 마음으로 육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