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해냈다는 이유로 이상하리 만큼 뿌듯하고, 나 자신이 좀 성장한 것 같다고 여기게 되는 어떤 일들이 있다. 처음 걸음마에 성공한 아기의 얼굴에 드디어 해냈다는 뿌듯함이 진하게 묻어나는 것처럼, 살다 보면 못할 것 같았던 일, 처음 도전하는 일을 해내고서 내가 좀 컸구나, 예전의 내가 아니구나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요리는 내게 그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요리는 내가 먹기 위해, 또는 가족, 지인에게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물론 의미하는데, 나는 서른둘 인생 대부분을 요리하지 않고 살았다. 부끄럽지만 스무 살에 대학에 가려고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요리는커녕 라면 하나 제대로 끓여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음식 솜씨가 기막힌 내 어머니로부터 항상 대접받고 살았기 때문이다.
서울살이를 시작한 이후에는 홀로 밥 먹을 일이 많았지만 요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자취방을 구할 때는 싱크대가 없는 방을 주로 찾아다녔다. 보통 싱크대가 없어 취사가 불가능한 자취방은 공간 자체가 싱크대가 있는 경우보다 조금 더 커 살기 쾌적한 편이다. 그런 자취방에도 복도 끝에 공용 싱크대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난 그마저도 제대로 이용한 적이 없었다.
식사는 당연히 사 먹는 걸로 거의 해결했다. 캠퍼스 내 학생식당이나 자취방 근처 분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귀가하거나 한솥도시락 같은 포장요리를 사들고 와 집에서 먹었다.물론 소형 핫플레이트를 구입해 자취방 안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컵라면을 먹는 횟수가 훨씬 더 많았다. 결혼 전 마지막으로 살던 자취방만이 취사가 가능했는데, 라면을 끓이거나 어머니가 냉동해 보내주신 음식을 전기레인지,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 정도로만 끼니를 해결했을 뿐 요리다운 요리는 역시해본 적이 없었다.
결혼 이후에도 이러한 삶의 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고 한동안 유지됐다. 짝꿍이 꽤나 요리를 잘해 난 요리를 하는 대신 설거지와 치우는 일에 집중했다. 그때 난 스스로를 요리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퇴사 이후 어느 날 문득 요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퇴사 이후 여러 심경 변화를 겪어서 그랬던 것인지, 처음 시작한 블로그에 올릴 콘텐츠로 요리를 생각했던 것인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분명한 건 요리는 내가 평생 하지 못할 것 같은 일이었다는 것이고, 나는 이걸 어떤 식으로든 해내야 어른으로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늦었지만 난 용기를 내 도전했다.
수많은 블로그에 올라있는 레시피와 백종원의 집밥백선생 동영상을 살펴보면서나는 겨우겨우요리를시작했다. 힘들기도 했지만 요리는 꽤재밌었다.초반에는간장계란밥, 계란찜, 애호박전, 김치볶음밥처럼 단순한 것을 하는 데도 애를 먹었지만 어느덧 잡채, 소불고기, 돈가스 덮밥, 골뱅이 소면 무침, 우렁 애호박 된장찌개, 부대찌개 등 그럴싸한 요리까지 척척 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맛이 없을까 걱정을 했고, 레시피의 계량이 헷갈려 주저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완성해낸 요리는 맛이 끝내줬다. 이 음식들을 먹으며난 내가 식사 한 끼를스스로해 먹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어른이 이제야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많이뿌듯했다.
물론 해 먹는 것보다는 사 먹는 것이 여전히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느덧 요리하는 것은 내게 큰 만족감을 주는 보람찬 일이 됐다. 앞으로도 요리를 하며 나는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무슨 요리를 해볼까, 짝꿍한테 주문을 받아 봐야겠다./ 2019년 1월 23일 어른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