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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자룡 Sep 10. 2023

원피스 실사 드라마, 이대로 괜찮을까?

고무고무~~~ 총

원피스 찐팬인 나와 한번도 본 적 없는 여자친구가 넷플릭스 원피스 실사화를 함께 시청했다. 


원피스와 나와의 시작은 특별하다. 나는 초등학생 때 만화광이었다. 당시에 대여가 유행했는데, 나는 항상 만화책을 사서 봤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눈길을 가르며 옛날에 백세약국이 있던 곳에 있던 동네 책방에 도착했다. 


거기에 원피스 1권이 출간되어 있었다. 이게 뭐지하며 책을 구매해서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1권을 보고 금세 사랑에 빠졌다. 많은 만화를 보았지만, 원피스를 보면서 처음으로 닭살이 돋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한테 "너네도 만화책을 보면 닭살이 돋니?" 라는 말을 몇 번 물어봤다. 유치한 만화보면서 별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성인이 되고 만화책을 거의 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원피스만큼은 전권을 구매해놓았다. 얼마 전에 지인과 원피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지간한 자기계발서보다 원피스는 훨씬 유용한 책이다." 이 말에 합의를 봤다. <원피스>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최고의 동기부여를 선사해준다. 


원피스 세계가 진짜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할정도로 잘 구현했고, 만화가 가진 장르의 특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드라마만의 특성을 반영해 새로운 스토리와 화면을 만들어냈다. 억지로 만화를 따라가려하기 보다, 드라마에 맞게 이식을 한 점이 너무 좋았다. 


내가 인상 깊게 본 부분을 공유하고 싶다. 


첫 째, 회상신의 활용!


원피스하면 떠오르는 게 회상신이다. 오다 에이치로 작가님은 주요 캐릭터의 서사에 매우 신경쓴다. 매 에피소드마다 심지어 빌런에게도 성장 과정을 부여한다. 가끔 내용이 너무 길어저 루즈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회상은 각 캐릭터를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회상신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스토리를 보여준다. 


원피스 초반부에 가장 감동적인 회상신은 루피와 상디의 만남과 조로와 키아나의 격돌이다. 조로와 키아나가 싸우는 회상신을 우물에 빠져서 탈출하려는 조로에게 동기부여하는 용도로 쓸지 몰랐다. 만화책에서는 보통 회상신이 시작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만 보여준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그렇게 했다가 채널이 바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조로와 키아나가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 우물벽을 오르는 조로가 번갈아가면서 등장했다. 


디테일한 내용은 드라마에 맞게 각색되었다. 키아나와 조로가 수천 번을 싸웠다는 이야기, 계단을 헛딛어서 하늘나라에 갔다는 이야기는 누락되었다. 만화책에서는 조로가 스승님께 키아나의 검, 화도일문자를 달라고하면, 그냥 주는데, 드라마에서는 "왜 이 검을 가지려는 건가?" 물어보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그러보니 사랑하는 유품인 검을 가져가는 사람한테 원래대로라면 그 정도 질문은 했어야 했다. 아무리 친해도 말이다. 


우물을 탈출하려고 정신의 에너지를 끌어쓰는 모습이 <배트맨 라이즈>의 오마주가 아닌가 싶었다. 그 장면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 거대한 지하 감옥에서 배트맨이 벽을 맨손으로 타면서, 결국 살아남는 장면 말이다. 만화책에서는 조로가 가끔 칼로 벽을 타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실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생각했는지 맨손으로 올라갔다. 


둘 째, 조로 너무 잘생긴거 아님? 


좋으면서 아쉬운게 조로가 너무 잘생겼다. 만화책에서도 미형이지만, 뭔가 더 전사 같은 느낌을 기대했다. 그런데 아이돌 그룹 센터 같은 외모였다. 여자친구는 상당히 좋아하던데, 여심저격용 조로다. 재밌는 건, 드라마를 전부 시청하고, 여자친구가 구글에서 서칭하더니 조로 배우의 아빠가 풍운의 시옹빠(雄霸)웅패, 마지막 보스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 중국 영화에 무슨 일본인이 나오냐며 반문했지만, 진짜였다. 풍운을 여러번 본 나로서 내적 친밀감 확생겼다. 다시보니, 부리부리한 눈, 짙은 눈썹이 닮았다. 어쨋든 조로는 전체적으로 조로 같았다. 과묵하고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는 모습. 옆에서 여자친구가 상당히 좋아하던데, 확실히 여자들이 좋아할 캐릭터다. 


셋 째, 버기가 이렇게 무서운 악당이었나요?


버기가 나오는 에피소드를 기대했다. 빵빵 터지는 웃음을 줄것이라고 생각해서 말이다. 근데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이 버기는 누구? 버기는 개그 캐릭터여야 하는데, 드라마에서는 야욕을 지닌 악당처럼 묘사되었다. 일단 얼굴부터가 무섭다. 분장부터 조커 판박이라 더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생각해보면, 만화처럼 버기가 가벼운 역할이었다면, 보스로서 면모를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영웅과 적들이 맞붙는 서사에서, 악행의 정도가 낮거나 미미하다면,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이야기도 성립되지 않는다. 


근데 동강동강 열매 진짜 세보였다. 아무리 잘라도 잘리지 않는 동강동강 열매, 모든 내용을 다 알고 봤지만, 그래도 흥미로웠다. 저걸 어떻게 이길까? 옆에서 여자친구도 버기 격퇴법을 열심히 설명했다. 전부 그럴듯해서 웃겼다. 


넷 째, 원피스 실사판 드라마 진짜 잘만들었다. 


여자친구와 보기 전에 사전에 굳이 기대감을 조성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동안 내가 그렇게 원피스 명작이니까 꼭 한 번 보라고해도 그걸 왜 보나며 반문했다. 원래 2화까지보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또 한 편 더 보자고 했다. 너무 궁금하다면서 말이다. 3편을 봤더니, 진짜 꼭 보고 싶다면서 4편까지 함께 봤다. 4시간 가까이 과자를 까먹으면서 전부 봤다.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너무 좋았다. 


원피스 명작이긴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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