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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자룡 Sep 09. 2023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대체 누가 그래?

초고의 의미를 다시 써야 하는 이유

<노인과 바다>를 집필한 허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고 말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종종 인용한다. 방금 작성한 초고는 쓰레기 같이 수준이 낮으니, 결과물에 개의치 말고 고쳐 쓰라는 당부의 말이다. 우리는 보통 “초고는 쓰레기야. 그러니 맘 편히 다시 쓰면 되.”라며 상대를 위로한다. 의도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나의 아버지는 환경미화원이었다. 박카스 광고에 나오는 아들처럼, 아버지 일을 도와준 적이 몇 번 있다. 쓰레기 트럭 위에 서서 밑에서 집어 던지는 쓰레기 봉투를 잡고 차곡차곡 쌓는 작업이었다. 차 아래서 아저씨들이 던지는 쓰레기를 받아서 차에 실었다. 가끔 날카로운 무언 가에 걸려서 봉지가 터졌고, 쓰레기가 쏟아져서 온몸에서는 악취가 났다. 기분이 리얼 쓰레기 같았다. 단언컨대 쓰레기를 다듬어봤자 쓰레기다. 비유적인 표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내가 쓴 원고를 ‘쓰레기’라고 해봤자 글쓰기 멘탈에 좋을 게 없다. 쓰레기라고 자조하다가 결국 의욕이 꺽이고 포기하게 된다. 그냥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이니까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대체 누가 쓰레기를 공들여서 고치고 싶어한다는 말인가? 자기 초고를 쓰레기라고 치부하면서, 고칠 의욕이 생길까? 초고가 쓰레기 혹은 걸레라는 터무니없는 말은 무시하자. 황제가 말해도 나에게 도움이 안되면 철저히 무시해야 한다. 




지금부터 초고에 대한 정의를 다시 쓰자. 초고는 무엇인가? 초고는 원석이다. 무한한 가능성 그 자체다. 퇴고는 원석을 다듬어 다이아몬드로 만드는 과정이다. 초고를 나라는 대장장이 손에서 영롱한 빛을 발할 원석이라고 인식하면, 사람은 기대감에 부풀어서 고치는 작업을 할 수 있다. 내 손길이 닿을 때마다 글에서 눈부신 광채가 나고, 사람을 현혹시키는 매력을 뿜어내는 상상이 절로 된다. 



여기서 퇴고를 한층 더 재밌게 하려면, 퇴고에 대한 의미를 확실히 부여해야 한다. 인간사의 모든 것은 의미부여하기에 따라 180도 변화한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나 스스로 특정 사물, 개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퇴고를 즐기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퇴고에 대한 관념적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첫째, 퇴고는 시간낭비다. 


이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 지인과 가벼운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강박적으로 최대한 아름답고 정교하게 글을 다듬으려고 한다면, 확실히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 내가 실제로 이렇다. 단순한 문자에서는 명확한 의사전달과 속도가 글의 완성도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휘발성이 강하고 소프트한 글에서 지나친 퇴고는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목적이 명확한 글은 다르다. 예를 들어 나는 9개월 동안 유튜브 스크립트를 170편 이상 완성했다. 한 편 당 최소한 수천 명이 보게 된다. 한 글자도 허투루 쓸 수 없다. 글의 깊이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의 글이 타인의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자각을 할 때, 퇴고를 낭비가 아닌 투자가 된다.


필자는 상세페이지도 많이 작성하고 있다. 누군가 글을 읽고, 구매 버튼까지 클릭하게 만드는 게 상세페이지의 목적이다. 고객의 구매 의욕을 최대한 고취시키는 게 상세페이지의 존재 이유다. 모든 글이 그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렬되야 한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한 번에 나의 상품을 사게 만들 수 있을지, 머리 싸매고 고심한다. 나의 글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돈이 될 수 있다는 선명한 인과관계를 깨달을 때, 퇴고는 엄청난 투자가 된다. 



둘째, 퇴고는 자신의 부족함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퇴고를 시작하면 조잡한 초고가 눈에 띈다. 그러면서 자동적으로 다른 사람이 만든 눈부신 완성품과 비교한다. “왜 나는 이것밖에 쓰지 못했을까?” 고민하고 좌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가? 당신이 영화관에서 보았던 모든 영화의 시나리오도, 처음에는 볼품없는 몇 줄에서 시작한다. 허술한 구성을 가졌고,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미약한 연관성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거기에 거듭해서 살을 붙이고 다듬으면서 눈부신 위용을 자랑하는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한다. 퇴고는 작은 가능성도 크게 부풀리는 과정이다. 당신의 부족함과 열등감을 증폭시키는 시간이 아니다. 퇴고는 작고 소중한 존재를 거인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어떤 글이든 퇴고까지가 완성이다. 초고는 미완성의 작품이다. 누구도 미완성의 작품을 내보이고 싶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영원히 퇴고만 할 수는 없다. 일정한 프로세스를 거치고 발행 버튼을 꾹 눌러야 한다. 그렇다면 퇴고는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 사람마다 작품마다 다른 기준이 있겠지만, 내가 얼마 전까지 적용한 기준을 소개하겠다. 




퇴고는 일정한 기준으로 해야 작품의 퀄리티에 일관성이 생긴다. 유튜브 스크립트를 만들 때는 이런 프로세스를 적용했다. 여기에 연구하고 사색하는 시간은 포함하지 않았다. 보통 3시간 안에 1,500자 글을 작성하고 1차 퇴고를 한다. 글을 쓰고 가급적 시간이 얼마간 지난 후에 퇴고하는 게 좋다. 글이 막 완성됐을 무렵에는 잔상이 남아 있고, 이미 그 내용이 최선이었기에, 무엇을 바꿀지 보이지 않게 된다. 며칠 후에 2차 퇴고를 하고 글을 발행한다. 



글을 공개하기 전에 자신이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자. 나는 대부분의 완성된 글을 낭독한다. 듣기 거슬리거나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수정한다. 읽기 좋은 글이 듣기 좋고, 듣기 좋은 글이 읽기 편하다. 읽다 보면 어디를 고쳐야 할지 느낌이 온다. 그리고 오픈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9가지를 리스트로 정리했다. 퇴고 전에 한 번 보면서, 글을 다듬어보자.



[퇴고 리스트]

1. 주장과 논거(사례)는 적절한가?

2. 군더더기를 삭제해서 문장을 간결하게 다듬었는가?

3. 더 나은 표현 방식은 없는가? 

3.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가?

4.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썼는가? 

5. 주어와 서술어는 호응을 이뤘는가?

6. 쉼표와 마침표는 적절하게 활용했는가?

7. 맞춤법은 정확한가?

8. 마감 시간과 분량을 지켰는가?

9. 글자 폰트와 크기 등 레이아웃이 눈에 보기 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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