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혜 작가의 <출근길의 주문>을 읽고
(수정이 많아 재업합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지난 주 내내 이다혜 작가의 <출근길의 주문>을 읽었다.
"누구 한 사람만 앞에 있어도, 한 명만 눈에 보여도, 그 길을 선택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
계속해주세요. 거기에 길을 만들어주세요. 시야 안에 머물러주세요. 계속해주세요."
“나는 종종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위의 두 문장에 매료되어 바로 책을 구매해 읽기 시작했다.
나 역시 자주 내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또 좀 더 나이를 먹으면 이직이 어렵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좋은 선배인가 하는 생각도 자주 한다. 이런 고민은 내 단골 고민 메뉴이기도 하지만 선배들이 모인 자리에서 단골 화두이기도 하다.
어떤 선배는 이직을 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버틴다라고 말하고, 어떤 선배는 그럼에도 도저히 못 견디겠다, 대차게 사표를 내겠다고 공수표를 던지기도 한다. (실제로도 냈다)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사표 제출에 굼뜨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누구에게도 부름을 받지 못하는 무쓸모의 존재가 될까봐서 일거다.
그래서 이직 대신 외주와 1인 출판사 설립을 선택하는 선배들도 많다. 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출근길의 주문>은 20년간 사회생활을 해온 저자의 경험, 느낀 점, 조언 등이 담긴 에세이다. 여성으로서 일터에서 말과 글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여성들끼리의 네트워크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같은, 일하는 여성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왜 일잘러 선배들은 임원이 될 확률이 낮은지, 일터의 여성이 쓰는 겸손어에 관하여, 악의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하는, 한 번 이상은 입밖으로 꺼냈을 주제들이다.
나는 3년 전 이나가키 에미코가 쓴 <퇴사하겠습니다>를 읽은 후 크게 인사이트를 얻은 게 하나 있는데, 무쓸모의 존재가 되었다고 느낄 때 질질 끌지 않고 미련 없이 퇴사를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빠를수록 유리하다는 얘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늘 투잡을 생각하고, 후배들에게도 취업하자마자 청약을 부어라, 기회가 된다면 다른 일도 해라, 라고 조언한다.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 젊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산 나를 다그치는 말이기도 하다.
<출근길의 주문>은 <퇴사하겠습니다>의 연장선상이지만 좀 더 일하는 ‘여성’에 집중한 이야기라 보면 좋을 것 같다. 하여간 이 책을 읽다가 소스라치게 놀란 대목이 있다. 심지어 그 대목을 읽고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구체적으로 목표를 쓰면 달성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기계발서에 수십 년 전에 나오고도 남았을 정도로 뻔한 이야기인데,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 놀란 이유는 이 문장 때문이었다. '올해 저축 목표액은 얼마인가?'
세상에 나란 인간은 저런 목표를 한 번도 세워본 적이 없다. 최근에야 정신을 차려 적금을 조금씩 하고 있지만, 지출이 줄지 않아 늘 원하는 목표치를 적금하지 못하고 있다. 그마저도 목돈이 필요하면 깨기의 반복.
오래전부터 이런 목표를 세웠어야 했는데, 돈 쓰면 살기에 바빴다. 그렇다고 원없이 써보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아끼면서 살아야 하는 프로 대출러 신세라니. 심지어 유튜브에는 왜 이렇게 젊은 짠순이, 짠돌이들은 많은 걸까. 이십 대에 어떻게 예적금으로만 1억이 있을 수 있지? (절망쓰)
1억은 모으지 못할 망정 해야 할 일들이라도 제대로 하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에 지난 주말 소소한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매우 소소함 주의)
미션 클리어한 것도 있지만 대차게 실패한 것도 절반이다. 가장 고치기 힘든 것은 아무래도 '배달 음식 시켜 먹지 않기'! 수십 번의 위기가 찾아왔고, 결국 떡볶이와 햄버거에 두 손 두 발을 들고 말았다. 지병도 못 이기는 못쓸 습관과 입맛...
나는 배달 음식과 함께 주말 내 3만원 돈 쓰기, 플라스틱 쓰레기 만들지 않기까지 줄줄이 참패하고 말았다. (제로웨이스트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글을 쓸 생각이다) 그래도 위안을 삼을 만한 것은 정리가 시급한 원고 3꼭지 중 2꼭지는 완성했다는 것.
나는 주말 내내 체크리스트 노예가 되어, 리스트들을 쫘악쫘악 지울 때마다 마치 엄청난 미션을 클리어한 양 뿌듯함을 누렸다. 누가 보면 지구라도 구한 줄. 또 실패를 마주할 때면 다음주에는 반드시 해내보리라 의지를 다졌다. 먹는 것은 암환자인 내게는 늘상 위중한 화두이자 당면한 과제인데, 갈수록 나태해지고 있어 큰일이다.
주말에 체크리스트 덕을 봐서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노트에 붙였다. 해야 할 일은 총 일곱 개였는데, 나는 그중 두 개를 클리어했다. 회사 일은 심지어, 고작, 달랑 1개.
출근해서 회의다 뭐다 쫓아다니다 보면 계획했던 일 중 겨우 한 개를 클리어하고 퇴근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늘 밀리는 일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 마감이 시급한 일만 하다가 집에 가게 된다.
지긋지긋한 마감 인생이지만,
나 월급 주는 곳에 나는 돌을 던지지 않는다.
왜냐, 아직 퇴직은 좀 더 먼 미래의 일이고
나는 선배들이 얘기하는, 바로 그 한창 때니까.
체크리스트를 좀 더 타이트하게 작성을 해서 연말에 나라에 헌납한 취득세 정도는 대출 리스트에서 제하고 싶다.
장래희망은 짠순이!
* 관련한 영상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Elt-cyKx20&t=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