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일 때 가뿐함
나는 30대 싱글 직장인이다. 출판사에 다니 있고, 책을 기획하고 편집한다.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낀 차녀이고, 비혼 아닌 미혼 상태이다.
세상에서 주어진 나의 이름은 다양하다. 편집자, 과장, 딸, 순심이 견주, 고모, 누나, 00씨... 다양한 나는 저마다의 미션이 있다. 편집자는 일하는 나이고, 딸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나이다. 다양한 내 모습 중에 하나가 무너지면 여럿의 나도 영향을 받는다.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진다.
가령 반복되는 마감에 일하는 자아가 무너지기도 하고, 부모님의 잔소리에 딸로서의 의무를 벗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또 반대로 아주 유기적으로 딸이기 때문에 일하는 내가 위로받기도 한다.
한마디로 인간은 무수히 많은 관계에 둘러싸인 여러 자아라는 것. 하지만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되는 내가 있다. 홀로 있을 때의 나.
집에 들어갈 때 나는 문앞에서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는다. 편집자라는, 과장이라는 외투를 벗고, 내 알맹이만 남도록. 혼자의 나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버텨봤고, 묵음 속에 편안함을 느껴본, 그대로의 나이다.
밥을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잔뜩 집 안을 어질러놔도, 하루종일 반백수처럼 누워만 있어도, 되는 나. 일주일 내내 아무도 만나지 않아서 입에 거미줄 친 나, 외로워서 혼자 모바일 세계를 여기저기 떠나니는 나, 그런 무수한 내가 집 안에 머무른다.
나는 나에게 관대하려고 제법 노력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요구 사항이 벅찬데도, 그 높이 만큼 도달하고 싶어 안달을 낸다. 그러다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면 나를 미워하고,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기도 한다. 그럴 때 내 내면의 얼굴을 못생겨진다.
내면의 알갱이는 상하기 쉬워 늘 보살펴줘야 한다. 너무 더운 것은 아닌지, 너무 습한 것은 아닌지, 혹 균열이 생긴 것은 아닌지, 속이 무르지 않았는지 면밀히 또 다정하게 살펴봐줘야 한다. 그래야 한 자아가 무너졌을 때 다른 자아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의 갭이 줄어든다.
자아들이 단단해서 서로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면 좋을련만, 그런 무적의 인간은 단언코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EcbUpUAVOS8&t=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