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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만화 Sep 10. 2020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고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

죽음을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선고를 받았을 , 그리고 통장에 잔고가 없을 ,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났을 , 사회에서 도망치고 싶을 , 누군가가 죽도록 미울 . 아주 많은 순간 나는 죽음을 떠올렸다. 하지만 다행히  우울의 정도가 누구나 갖고 있음직한 정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어 나는 여전히 물리적인 육체를 간직한  사고하면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삶에 대해서 훨씬 많이 생각한다. 계기는  선고다. 주어진 수명보다 이른 작별이 내게 찾아올 수도 있다는 불안과 공포는 도리어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했다.


나는 남들 만큼 살고 싶고, 남들 만큼 경험해보고 싶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간혹 유튜브나 혹은 투병 이야기를 출간한 저자들의 책을 보게 되면 늘상, 이들을 다시는   없을까봐 덜컥 두려워지곤 한다. 나는  옆에 있는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 그리고 누군가보다 내가 하루    있다면,  하루에 여분이 조금 넉넉하다면, 간절한 누군가에게 떼어주고 싶다는 송구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휴가 기간 동안 <죽은 자의  청소>라는 책을 읽었다. 독서 집중력을 거의 상실해가고 요즘, 간만에 진지한 자세로 읽은 책이다. 죽음을 다른 책은  어떤 책보다 삶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를 준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한없이 겸손한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죽은 자의  청소>   만에 10쇄를 찍은, 소리 소문 없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하니 자리 잡은 올해 ( 선정)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있다. 이렇게 좋은 저자를 발굴하여, 이렇게 좋은 책을  편집자의 마음은 얼마나 좋을까 짐작해본다.


특수 청소부로 일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작가가 되기 위해 준비해온 저자의 공력이 진지하고 사색적인 문장에서 느껴졌다.


애도하는 자세로 집을 치우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 영혼을 배웅하는 느낌,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것을 느꼈다.


많은 에피소드들 중에서 착화탄을 피우고 죽음을 기다리는 와중에 분리수거를  심성이 착한 여인이 기억난다. 죽어서까지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들. 살았다면 우리의 좋은 이웃이었을 그녀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가슴을 저몄다.

건물 청소를 하는 이가 전하는 그녀는 너무나 착한 사람이었다.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억울함과 비통함이 쌓이고 쌓여도 타인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남에겐 화살 하나 겨누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향해 과녁을 되돌려 쏘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죽일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착하고 바른 심성을  자기 자신에겐 돌려주지 못했을까?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죽은 자의  청소> 중에서



공항 근처에 살아서 우리 동네에는 여행업, 항공업 종사자들이 많다. 그래서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이웃들이 종종 있다. 오래도록 수거되지 않는 택배 상자들을 보며, 그들의 출타를 짐작한다. 그런데  책을 읽은 ,  달이 넘게  앞에 택배가 그대로 있는 집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다행히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택배 봉투 역시 그렇게 값진 것이 들어가 있지는 않아 보인다.


나는 그녀가 본가에 머무르는 것이겠거니, 애인의 집에 기거하는 중이겠거니, 혹은  여행을 떠났기를 바란다.

책에서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옆집에 배달될 햄버거 세트가   며칠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저자는 죽음의 냄새를 맡고 불안해한다. 다행히 이튿날 새벽, 그녀의 귀가를 알리는 반려견들의 우렁찬 울음을 듣고 저자는 안도하며 다시 잠을 청한다.


죽음이라는 것이 일상에 이렇게 밀접한 삶이라니, 남들은 애써 생각하려고 하지 않은 특수한 상황을 정리하는 삶이라니. 얼마  목격한 로드킬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나로서는  묵직함과 우직함, 담대함에 감복할 따름이다.



 스위치가 켜져 있는  같아요. 언제나 죽음에 관해 생각하다 보니 이것을 단순히 괴롭다, 또는 ‘즐겁다 감각으로 나눌  없는  같아요. 전등이 환하게 켜져 있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밝아도 여봐란듯이 쉽게 잠들곤 하잖아요.  경우는 이제 스위치를 켜둔  잘자는 편이   같아요.”
<죽은 자의  청소> 중에서



죽음에 모두 대범할  없지만 결코 무관할 수는 없다. 죽음은 모두에게 주어진 삶의 결말이니까. 하지만 어떤 결말을 맞이하고, 어떤 삶의 모양을 남길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모두가 다른 형태로 살아가고, 떠나가니깐.





거시적이지만  책을 통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살아가야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그리고 살아봐야 아는 것들을 경험하기 위하여. 너무나 간단해서 고통보다는 하찮아 보이지만, 나는 그리고 당신은 계속 살아내야 한다.  성실한 레이스는 끝내는  신의 몫이니까.


고통이 죽어야 끝나야 한다는 함정을  책은 그들이 남기고 떠난 소중한 것들을 통해서 일깨운다. 사랑했노라. 그리고 사랑하고 있노라고.

​“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놓지 못하고 품어온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젊은 나이에 미쳐서 스스로 돌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불행한 남자를 보았다면, 마치 인생의 보물인  부질없이 간직해온  과거의 불행함을  남자에게 그대로 전가하고는, 나는 결백하답시고 시치미 떼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듯 타인과 세상을바라보는  같다. 그것이 내가  지하 방에 관해 알게  유일한 진실이다.”
<죽은 자의  청소> 중에서





*영상을 통해  리뷰를 확인해보세요

https://youtu.be/blTlta7cf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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