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오랜만에 쓰는 나의 암 이야기.
나는 암환자다. 하지만 특별히 커밍아웃하지 않은 암환자다. 이게 뭐라고 숨기기까지 하나 싶지만, 평범함의 범주에서 벗어나 본 사람은 알 거다. 다르다는 것이 주는 은근한 차별을.
커밍아웃을 굳이 하지 않는 이유는, 상처받기 싫어서다. 내 불행의 그램 수는 사람들마다 모두 다른 무게를 갖는다. 내게는 천근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600g일 수 있고 더 미비할 수도 있다. 허나 상대의 그런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에는 이 문제는 내게 너무 버거운 현실이자, 녹록하지 않은 타이틀이다. 그래서 이놈이 내 사람이다 확신이 들지 않으면 부러 내 부캐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암환자들 사이에서는 별종이다. 항암을 하지 않은 운 좋은 환자이기 때문이다. 가끔 나의 투병기에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고 떠나는 이들이 적어놓은 글들을 보면 맞다, 나는 암환자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마치 암환자이지만 암환자 아닌, 암환자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상으로 빠르게 복귀한 덕에 3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나조차가 '암환자'라는 나의 부캐를 잊을 때가 많다. 지난 달 내가 먹은 라면의 그릇 수, 피자의 판 수, 맥주 캔 수가 그것을 보여준다. 방만하고 게으른 암환자!
하지만 나도 암환자이기에, '암유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경악한다. '암'을 겪었거나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 단어가 결코 웃으면서 넘길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암환자에게 누군가 암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만큼 끔찍한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나는 허지웅의 소식을 들었을 때, 유상무의 소식을 들었을 때 이들이 이겨내기를 진심으로 간절하게 바랐다. 그들이 다시 나니까.
최근에 인스타그램에서 뵈었던 <사기병>의 저자 윤지회 님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피드에 글이 올라올 때마다 어떤 댓글도 남길 수 없었다. 마음이 복잡했고, 다잡을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 어느 날 문득, 암환자이지만 평이하게 사는 내 하루를 작가님에게 드릴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하루, 또 누군가의 하루, 그렇게 하루들이 모여 작가님이 사랑하는 아들과 조금만 더 함께할 수만 있다면...
이놈의 부캐 때문인지 유튜브 알고리즘은 기똥차게 내게 암과 관련된 정보를 읊어준다. 유튜브는 내가 이 콘텐츠에 잘 낚인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게지. 얼마 전 보말할망이라는 4기암 환자의 자연치유기를 보고, 또 다시 내 삶의 방만함에 자책이 들었다.
유방암에 간전이. 항암을 택하지 않고 제주도에서 자연 치유를 하고 있는 또래 여성의 이야기. 1기와 4기, 이 숫자들은 우스울 정도로 작은 차지만 여기에 삶에 대한 인식을 포함한다면 아마도 1에서 수천으로 차이가 벌어질 것만 같다.
(풀떼기 내 도시락)
그녀의 삶을 바라보고 나도 나의 삶을 다듬는 시간을 가졌다. 라면과 가공 식품, 설탕은 끊기로 결심을 했다. 다행인 것은 원래 비건 지향인이라 고기와 달걀을 먹지 않는 건 어렵지 않은 선택이라는 거다. 문제는 라떼. 스타벅스의 라떼는 우주최강으로 보드랍고 고소해서, 이것까지 끊을 수 있을까? 끊어야만 할까?
마시고 싶다.
지금 당장이라고 회사 밖을 뛰쳐나가서
고소한 라떼를 야금야금 음미하고 싶다.
*덧붙여, 출판사 편집자로 십여 년 일하고 있습니다. 책도 소개하고 암환자이지만 일반인의 평범한 삶을 담은 유튜브를 하고 있어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YYwZ2SU0yKEIWq17ayyFOg?view_as=subscriber
https://www.youtube.com/watch?v=CzIDLIdYvKE&t=9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