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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만화 Oct 23. 2020

아침형인간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한다?

삼십 년만에 아침형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침잠이 많다. 아침에 일어나 정기적으로 어딘가를 가야 하는 삶을 시작한 이래로 시간을 쫓기지 않은 적은 한 번도 (한 번도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엉망인 삶을 살아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존나) 달리고, 매번 혼날까봐 숨죽이며 살아왔다.


웃긴 사실은 자기가 늦게 나온 주제에 스트레스는 또 엄청 받는다는 것이다. 시간에 쫓기리도 할라치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것은 즉각적으로 두통이라는 반응으로 드러나곤 했다. (스트레스가 몸으로 나타나는 타입)


그럼 일찍 나오면 되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게 그렇게 쉬웠다면 내가 지금껏 지각생 타이틀을 달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몸부림을 쳐보기도 했다. 나라고 왜 안 해봤겠는가!



2003년 한 일본 작가가 쓴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을 냈을 때, 근면함에 빚진 마음이 있는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뜨겁게 타올랐다. 당시 얼마나 붐이었냐면, 어느 날 내 책상에도 올라와 있을 정도였다. 자녀를 우회적으로 조정하고 싶은 부모의 암묵적인 메시지가 담긴 책 선물!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삶도 바뀌고 시험도 합격하고 지구 뿌실 것 같은 그 과잉된 열정으로 가득한 책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자기계발서식 화법과 세계관에 잘 홀리는 나는 당장에 '아침형 인간'이 되자는, 그 마법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 물론 알람이 울렸을 때 눈을 뜨기는 했다. 눈을 뜬 이유가 알람을 끄기 위해서였지만.


그럼에도 내 아침형 인간에 대한 로망은 나를 계속해서 자극했다. 새벽에 영어학원을 끊기도 하고, (당시에는) 새벽 예배를 나가보겠다고 선언한 것은 모두 그 로망이 낳은 결과였다. 하지만 간신히 하루만 채울 뿐, 다음 날부터는 자책에 시달리며 꿀잠을 자댔다.


그런 경험을 수없이 하다 보니 나란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올빼미형이라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팅을 잡을 때나, 병원을 예약할 때나, 비행기 시간을 잡을 때나 모두 가능한 느긋한 시간을 택했다.


(이건 정말 치명적이고 치욕적인 실수인데, 쳐자다가 비행기를 놓친 적도 있다. 그것도 회사 출장에... 다행히 친한 동료 둘이 가는 출장이어서 제발 비밀로 해달라고 간청하며, 다음 비행기를 예약해 떠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이 정도면 정말 중증 미친년이지 않은가)


그렇게 나는 서른 중반이 되었고, 다행히 지금 회사는 자율출근제라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잘 다니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지난 주부터 아침에 일찍 일어나볼까, 뽐뿌가 다시 일기 시작했다. 계기는 한 작가님의 인스타 피드였다.


최근에 한 문학상을 받은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고, 작품도 좋았지만 작가님의 삶에 호기심이 생겨 에세이 제안을 하게 되었다. 미팅을 진행해 서로 뜻이 맞아 목차도 뽑고, 계약서 초안도 오고갔는데, 진행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관련된 내용에 대한 여러 입장 차이가 첨예해서, 우선 접기로 한 것이다.


나는 작가님을 놓치기 싫었다. 소설가라 함은 글에 대한 퀄리티는 엎어놓고 보장이지 않은가. 글 되고 인지도 되고 인품마저 좋은 작가님을 놓치면 그건 편집자가 무능한 것이다, 생각하며 어떤 아이템을 다시 제안할까 궁리에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 봐도 올빼미일 거 같은 작가님이 아침에 일어나 책을 읽는다는 피드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도 또 올라왔다. 그즘 유튜브에서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는 아침형 인간의 브이로그가 심심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아침에 일어나볼까?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궁리해볼까? 하기에 이르렀다. 무엇이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없이 소박하고 평범한 이유로 나의 아침 라이프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약속대로 5시 50분에 알람이 울렸다. 그런데 세상에나 만상에나 슬며시 눈이 떠지고, 일어나보자는 마음이 드는 게 아닌가. 심지어는 그렇게 잠이 쏟아져 못 견딜 정도도 아니었다.


그래서 차를 올리고, 한 시간가량 멍을 때리고, 책을 펼쳤다. 또 그간 배변 산책에 급급했던 순심이와의 산책도 좀 더 멀리 한적한 공원까지 갈 수 있었다. (나 이러다 인간 개조되는 거 아냐?!!!)


언빌리버블!

나는 삽십 년만에 아침형 인간이 된 것이다!!


그 다음날에도 6시쯤이 눈이 떠졌다. 어제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가뿐한 마음으로 출근을 하였다. 그런데 그때 내 속에서 기이한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좀 더 더 일찍 일어나야지!", "책도 고작 그것밖에 못 읽냐?! 더 읽어야지!!" 나를 채근하는 욕망의 소리였다.


대체 왜?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아침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거지?

나는 그냥 내 시간을 고요히 온전히 유영하고 싶은 것뿐인데!

그래서 내 나름의 수칙을 정했다.


 ‘아침에 독서 클럽 수칙’ 

1. 남들이 정한 시간이 아니라 내게 맞는 기상 시간을 정한다  

2. 못 일어났다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다 (매우 중요)

3. 자기계발식 성공 신화 대신 시간을 유영하는 법을 느낀다

4. 독서의 양도 자신에게 맞게 정하고 완독의 속도가 늦다고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는다 (내 얘기임)

5. 아침 독서를 통해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주변에 편하게 한다 (안 들어도 그만이라는 자세 유지) 



이러자 조금 가뿐해졌다. 나의 아침은 자기계발이 아닌 자기 힐링의 시간이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영감을 준 작가님에게도 나누었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심심찮게 올라오는 미라클 모닝이 내게는 해당되지는 않는 이야기였다. 나는 여전히 새벽 4시 30분은 자야 되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다. (인간의 기상시간은 해 뜨는 시간을 기본으로 해야 된다는 생각) 그 시간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그 시간에 일어나면 되는 것이고, 그게 힘든 사람이라면 4시 30분이라는 시간 대신 자신에게 맞는 조금 이른 기상 타임을 정하면 된다. 또한 본인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게 되는 자기 채근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을 하든 번아웃이 오지 않으니까.


나는 나의 속도로 가련다.




* 5일간 아침에 일어나 생활한 기록을 담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_a-CItEnkc&t=56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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