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비슷한 심리서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지난 목요일, 5개월째 기획 방향을 헤매고 있는 어느 작가님과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양재역 근처 맛집 커피숍에서 만나 한참 이야기했다.
어떤 책은 기획이 쉽게 풀리기도 하지만 어떤 책은 이렇게 꽤나 걸리기도 한다. 이런 스타일로 해보자, 하고 목차를 쓰고 샘플 원고를 두어 번 써보았는데, 작가님에게 잘 맞는 옷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원점에서 논의를 하기로 한 것이다.
이럴 때는 내가 무능해서 작가님을 고생시키는 건 아닐까 자책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긴 회의를 끝에 '이거다!' 하는 기획을 찾아냈고, 주 단위로 마감을 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다. 그리고 이어진 수다 타임!
"팀장님, 그거 보셨어요?"
"뭐요?"
"교보문고 매대 사진 짤이요. 완전 소름 돋아요."
"궁금해요. 보여주세요."
작가님은 핸드폰 사진첩을 뒤져 책이 진열된 서점 매대 사진을 보여주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보니, 너무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비슷한 그림체의 여성들이 모두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표지 그림들! 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무기력해진 것일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가 히트한 이후로 이런 종류의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있다.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들이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당신은 지금 우울한 게 맞아요,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되기도 했다. (우울함을 느끼는 일이 워낙 일상적인 테마이기도 해서일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매일 수시로 우울하니까)
얼마 전 기획회의 때 같은 팀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 둘 다 우울한 사람들을 위한 심리 상담가, 정신과 의사를 조사해왔다. 좋은 상담가인 것은 알겠지만 시장 포화 상태에서 이분들이 쓴 책이 새로울지는 고민이 되었다. 결국 두 기획은 아쉽게도 통과되지 못했다.
어느 팀원은 "팀장님이 자존감이 높은 거 아니네요?"라며 우울함에 무감한 내게 농담을 던지기도 했는데, 나 역시 우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우울하지만 우울함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아마도 지나친 외로움이 (반려견 수발하느라) 일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오랫동안 우울해서 이제는 우울이 궁금하지도 새롭지도 않아서인 것 같기도 하다.
또 우울이 왔군,
이놈의 호르몬!
에잇, 이 망할 호르몬의 노예!
베프의 방문마냥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호르몬에 인한 우울이면 패턴을 이해하기 위해 달력을 보고, 인간이 문제면 유사 상황들을 떠올린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한 거야> 같은 제목의 책도 있다던데, 외람되지만 나는 그런 류의 책에 관심이 없다. 반복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미연의 불편함이 있다면 관계를 과감하게 정리하는 편이다. 살아보니 그런 부류는 친구가 아니더라. 다 커서 왕따인 듯 왕따 아닌 왕따를 겪은 후 뼈 아프게 얻은 교훈이다.
나를 지키는 것이 배려보다, 인내보다, 희생보다 중요하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는데 우울함은 우리의 일상에 매일 존재한다. 우리는 매일 수시로 우울하고, 때때로 절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고, 나의 우울에 대한 스스로 진단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이러한 책들을 통해서이기도 할 것이고, 적극적인 치료가 될 수도 있을 거다. (상담과 우울증 약 복용, 혹은 나처럼 반려동물에 기대기도 하는 등)
어떤 방식을 취하든 나는 이제 책 속에 누워 있던 무기력하고 우울한 여성(남성)들이 이제 일어나 걷고, 먹고, 웃고, 삶을 멋지게 탐험했으면 좋겠다. 제발 좀 잘 먹고, 좀 호탕하게 웃자! 인간의 관심사가 바뀌면 출판 시장의 트랜드도 역동적이고 다채롭게 변하게 될 것이다. 비슷비슷한 거 말고 새로운 거! 세상에 없는 거! 그런 책 만들고 싶다. (그러고 싶은데 아하, 어렵고요 ㅜㅠ)
* 아침 시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연습 중입니다. 영상도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_a-CItEnkc&t=683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