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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만화 Oct 16. 2020

#02 서울 외곽으로 갈수록 행복하다?

강남에서 벗어나 찾은 행복

 나의 서울 살이는 크게 네 시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중계동 시대, 두 번째는 혜화동 시대, 세 번째는 논현동 시대, 네 번째는 마곡동 시대. 삶에 큰 분기점이 생길 때마다 자의 반 타의 반 짐을 꾸려 이곳저곳을 전전한 것인데, 환경의 변화는 삶의 무드에도 큰 영향을 끼치곤 했다.



 첫 번째 시대의 배경이 된 중계동에서 나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이십 대 중반까지 거주했다. 아파트 단지가 빼곡한 전형적인 주거 단지인 그곳에서 교복을 입고 왔다갔다 하는 학생들과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엄마들을 보는 일은 한강에서 산책하는 강아지를 보는 것만큼 흔한 일이었다. 그곳은 마치 큰 단위의 가정 같다고 해야 할까. 옹기종기 모여 아이들을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같달까. 하여간 다미고치 같은 집에서 아이들을 열심히 키워내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 사는 동안 나는 마치 세상에 동네라고는 이곳 한곳만 있는 것 같은 시각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노원역이 최고로 힙한 줄 알았고, 미도백화점(현롯데)이 제일 큰 줄 알았다. 어린 시절의 경험치로 말이다.


 하지만 학창시절이 끝나고 나의 반경이 넓어지면서 매일 이침마다 그곳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것이 마치 배를 타고 섬을 나갔다 들어오는 것 같이 고된 일과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노원구는 어디든 참 멀다. 게다가 주거 지역이다 보니 종점에서부터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가끔 아버지와 같이 출근을 하는 날에도 대화는커녕 각각 어느 귀퉁에서 짜부되어 말없이 짐짝처럼 목적지로 실려 가곤 했다.


 중계동에서 혜화동으로 이주를 한 것은 회사를 관두고 일본에 1년 정도 거주하고 돌아온 뒤다. 혼자 살다가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자 영 생소하고 어색했다. 무엇보다 (더럽게) 불편했다. 그들이 만든 원칙과 루틴은 머리가 큰 내게는 ‘간섭’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1일 3싸움은 예삿일이 될 정도로 혈전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치열했던 독립 전쟁이 내 쪽으로 승기가 기울게 될즈음 나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독립을 하게 되었다. 물론 오빠와 낑겨서였지만.



 당시 나의 회사는 동대문구였고, 오빠는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학교 병원에 근무하고 있던 타라, 혜화동은 썩 괜찮은 선택지였다. 둘 다 도보로 출퇴근이 가능했고, 지척에 맛집과 놀거리가 널려 있어 갓 독립한 젊은 처자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내가 혜화동을 사랑한 진짜 이유는, 핫플이어서가 아니라 그 지역이 갖고 있는 오래된 정취가 좋아서였다. 나는 지금껏 혜화동 로터리의 나무들처럼 울창하고 멋진 나무를 본 적이 없다. 길을 건너다가 잠시 건널목 한중간에 서서 길가 양옆에 자리잡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거다. 혜화동의 나무가 얼마나 거대하고 멋진지. 인부들이 높은 사다리차를 타고 나뭇가지를 치면 으례 겨울이 찾아오곤 했다. 나는 그곳을 감히 나무의 동네라 말하고 싶다.


 회사를 강남으로 이직하게 되고, 오빠도 결혼하여 출가를 하게 되면서 더는 혜화동에 살 이유가 없어져 택시비나 아낄까 하여 논현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논현동에서는 딱 2년을 살고 나왔는데, 나는 지금껏 살았던 동네 중에 논현동이 가장 별로였다. 길가의 나무들은 빈약하고, 정돈된 골목은 정취라는 것이 없었다. 집 바로 앞에 버거킹이 있고, 길 건너편에는 스타벅스도 있었지만 나는 왜인지 그곳에 살 때 늘상 길거리 한복판에 사는 기분이었다. 창문 밖을 내다봐도 나무 한 그릇 보이지 않았고, 드높은 회색 건물 천지였다. 그리고 새벽까지 요란하게 들려오는 차 소리. 어쩌면 나는 이곳에서 병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3년 뒤, 청천벽력 같은 암선고를 받았으니.



 혜화동에서 강남으로 이사하는 날, 차로 한강을 건널 때 뭔가 성공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 기분은 미디어가 심어놓은 거짓이었다. 강남은 정신없이 사람들을 수용했다가 왕창 뱉어내는 곳 같았다. 마치 워터파크의 파도풀처럼 무자비함을 숨기고 있다가 와르르 사람을 쓸어버리는 곳. 하물며 주거지의 환경도 환경이었지만 이직한 회사도 퍽퍽하긴 매한가지였다. 야근이 얼마나 많았던지 주 5일을 새벽에 들어가고도 주말 오후면 다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회사를 나갈 정도였다. 계절마다 한 번씩 있는 살사동호회에서 파티 뒷풀이를 하다가도 새벽에 회사로 돌아가 마감을 했으니 ‘할말하않’이다.


 결국 스트레스와 과로로,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는 두통이 찾아와 한 일주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있을 거 다 있는 동네에서 성형외과 외 병원을 찾는 일은 또 왜 이렇게 어려운지. 강남은 내 시선으로는 뭔가 밸런스가 안 맞는 곳이었다.


 강서구 마곡동으로 이사를 한 것은 아버지의 뜻이었다. 아버지가 분양받은 오피스텔이 완공되어 자연히 그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마침 파주에 있는 출판사로 이직까지 하게 되어, 잘됐다 싶어 걱정도 되었지만 이삿짐을 신나게 꾸렸다. 번듯한 브랜드 신축 오피스텔 입주라니, 거절할 이유가 하등 없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초반에는 그렇게 만족스런 주거 환경은 아니었다. 2년 전 마곡은 한창 개발 중인 상태라 일대가 다 공사판이었다. 아직까지 서울에 개발할 땅덩어리가 이렇게나 남아 있나 싶을 정도로 곳곳에서 건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1년, 2년. 마침내 동네가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고 서울식물원 공원까지 개관을 하게 되면서 나의 마곡동 라이프에 청신호가 켜지기 사작했다. 공세권이 이렇게 중요하다. 그리고 마곡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순심이(반려견)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이 말광량이 회색개로 (말티즈인데 너무 싸다녀서 항상 회색임) 인해 최초로 이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비단 마곡동에서의 내 삶이 논현동에서의 삶보다 우월하게 행복한 이유는 환경 탓만은 아니라고 말해두고 싶다. 외곽으로 일터를 옮기면서 매일 할당량을 해야만 이번 달의 마감을 간신히 할 수 있었던 지난한 삶이 끝이 났기 때문이다. 몰론 여전히 치열함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때처럼 나를 다 갈아넣어야 하는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해도 되는 스케줄이 된 것이다.


 실제로 파주에 있는 출판사들은 야근을 지향하지 않는다. 퇴근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무서울 정도로 한적해지고, 서울로 오가는 버스의 수도 준다. 안전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 속내야 모르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야근을 하라는 강요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언젠가 11시까지 나 홀로 야근을 한 적이 있다. 일을 마치고 텅 빈 건물의 불을 끄고 나가야 하는 게 너무 무서워서 염치 불구하고 내가 있던 층의 불을 끄지 않고 도둑 퇴근을 해버렸던 적이 있다. 새까만 출판단지에 내가 있던 사무실만 불을 밝히고 있던 기억. 그만큼 파주의 밤은 빨리 오고, 적막했다.


강남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광경이다. 강남은 그 시간에도 환하고, 사람들이 대낮처럼 활보한다. 술과 흥, 사랑과 우정들을 그곳에 한 가득 쏟아내고 아침이 되면 출근하는 사람들이 그 에너지를 대체한다. 빈 시간 없이 가득 무언가로 채워지는 욕망의 공간. 나는 그곳에서 벗어나고서야 어두워지면 자고 해가 뜨면 깨는 생활에 돌입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신적으로)


 가끔 서울 한 중심에 있는 출판사로 이직을 하겠냐는 제안이 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박에 거절한다. 그곳에 가면 내 삶은 또 다시 생각할 겨를 없이 조직이 채찍질하는 대로 (성과지향적 성격이라) 중심을 잃고 열심히 살아가는 데에 몰두하게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감미료는 없더라도 정성스런 밥을 한술한술 천천히 뜨는 삶이 더 좋다. 외곽으로 갈수록 행복해진다,라는 내 가설이 어느 정도 통용될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엔 잘 들어맞았고 나는 지금 제법 행복하다.




*출판사 편집자입니다. 간혹 글도 쓰고 종종 영상도 만듭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YYwZ2SU0yKEIWq17ayyFOg?view_as=subscriber

https://youtu.be/YHAkXSlzbJ4


https://youtu.be/9HKGbs6dM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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