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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만화 Oct 30. 2020

#04 서울대 가면 성공한답니까?

엄마의 욕망이 깃든, 관악구에 대하여

중계동에서 세 자녀를 키운 부모님은 남동생이 18살이 되는 해, 관악구로 이사를 결정했다. 오빠와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남동생이 실현한 것이다.


서울대 합격! 그것도 조기 입학으로!


부모님은 수십 년을 살았던 동네를 티끌 만치의 미련도 없이 쿨하게 떠날 채비를 했다. 사람들이 물어보면 만면의 웃음 가득한 얼굴로 겸연쩍은 연기를 하며 이사가는 변을 늘어놓곤 했다.


“저희 애기 서울대를 들어가게 되어서요. 아무래도 여긴 통학하기에 멀기도 하고...”


경기도도 아니고, 강원도 아니고, 같은 서울인 데다가 쇠도 씹어먹을 18살 남자아이가 노원구에서 관악구까지의 통학이 뭐가 그렇게 어렵다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들은 마치 야밤도주라도 하는 양 입학식 전에 서둘러 집을 비웠다. 그즘 독립해서 따로 살고 있던 나는 부모님의 이사로 어부지리로 내 방에 있던 오래된 책들을 떠안게 되었다.





나는 가끔 남동생이 서울대가 아니라 연대쯤 갔으면 어땠을까, 종종 이런 하등 쓸모없는 가정을 하곤 한다. 부모님은 극구 아니라고는 하지만 '서울대 나온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운 나머지 끝내 다 큰 아들을 놓아줘야 한다는 인간계의 순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커피 한잔을 느긋하게 하는데, 남동생에게 자꾸 이빨을 닦으라며 가방에서 일회용 칫솔을 꺼내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새끼가 내 남친이었으면 헤어졌다'


서른이 넘은 아들의 치아 상태를 신경쓰는 늙은 엄마라니! 엄마, 아빠는 임플란트가 네 개나 되잖아요. 아빠나 닦입시다. (실제로는 아빠도 닦게 한다)


남동생은 엄마의 끈덕진 사랑에 한 차례 가출과 한 차례 절연 선언을 한 바 있다. 대학교 졸업반즈음 부모님은 남동생이 서울대 이상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원했는지 난데없이 의학전문대학원을 가라고 애를 달달 볶기 시작했다. 문제는 남동생은 그럴 의사가 1도 없었다는 데에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겹도록 공부를 해온 동생은 직장생활을 하며 성취감을 맛보고 싶다고 수차례 얘기했지만 쇠 귀에 경 읽기. ‘다 너 잘 되라는 건데 왜 그러냐’, ‘나중에 부모한테 고맙다고나 하지 말이라’ 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싸움은 가출로 이어진 것이다. 아들이 사라진 일주일만에 부모는 백기를 들었다.


연을 끊겠다고 한 사건은 이에 비하면 더 비극이다. 내가 볼 때 남동생은 꽤나 연애를 즐기고, 연애를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다. 몇 번의 연애 와 실패 소식은 부모님을 통해서 생생하게 전달되었고, 최근에 만나고 있는 여친이 영 마음에 안 든다는 것까지 팔로업이 된 어느 날,  결혼이 하고 싶다고 그 친구를 데려왔단다.


엄마는 이 결혼이 못마땅했지만, 자식 이겨서 뭐하냐며 아빠가 설득하는 통에 상견례 자리까지 가게 됐다. 눈치 없는 남동생과 아빠가 마냥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동안 엄마와 그 친구의 갈등은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에, 내 잘난 아들을 빼앗겼다는 억하심정까지 더해져 마침내 핵폭탄이 투하되고 말았다. 꾹꾹 누르고 있던 본심이,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와장창 쏟아지고 만 것이다.


결국 결혼은 파토가 났다. 큰 충격을 받은 남동생은 약 1년간 가족과 완전히 연락을 끊었는데, 나중에 그 속내를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엄마와 관계가 정리되지 않으면 어떤 여자를 만나도 불행할 것 같아."


하지만 그 처절한 몸부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부모님은 여전히 아들은 너무나도 사랑한다. 15살 철부지 어린 아들을 사랑하는 그 방식 그대로.


은퇴를 하고 교회 생활에 적을 두고 있는 부모님은 막내 아들을 소개할 때면 언제나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내뱉곤 한다.


“아, 김 집사님. 우리 막내아들. 서울대 나와서 oo기업 다니잖아.”


세상에 TMI도 이런 TMI가 없다. 서울대가 대체 뭐라고.




엄마의 욕망이 깃든 관악구. 누군가는 학교 이름이 새겨진 잠바를 입고 명문대생의 권위를 누리고 있을 때 누군가는 서울 상경의 첫 시작점으로 관악구에 발을 디딛는다. 한때 한참 집을 보러 다닐 때 관악구에 있는 집도 몇 개를 보았는데, 가격에 비해 집이 너무 좁아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수요가 많은 만큼 공급도 많아 별에별 집이 다 있었다. 그만큼 발품을 팔아야지만 눈 뜨고 코 베이지 않는 곳이다. 오늘도 아파트 사이 속에 빼곡히 자리잡고 있는 다세대 주택 속에 명문대생 꿈을 꾸고, 갓 독립한 친구가 희망을 품겠지.  


서울의 대학가는 이곳뿐만 아니라 대개 오래됨과 힙함이 공존한다. 홍대의 경우 힙함이 우세하다면 성대의 경우는 오래됨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한때의 비릿한 청춘을 보내고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더 나은 곳으로 떠나간다. 그리고 그곳은 또 다른 젊음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문득 궁금하다.

우리 부모님은 왜 계속 관악구에 사는 것일까?

본인들 명의 집을 놔두고 아들도 떠난 관악구의

전세집을 옮겨 다니며 말이다.

부모의 역사 중에서 그래도 손꼽을 수 있는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걸까.

집 벽에 붙어 있는 남동생의 졸업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그리고 왜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 벽면에 사진이 자꾸 늘어나는 것일까? 오빠와 나, 그리고 남동생, 할머니, 며느리와 손주들, 순심이(내 댕댕이)... 부모의 역사가 전시된 벽면 한 가득을 바라보며 내 부모의 나이듦을 절감한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YYwZ2SU0yKEIWq17ayyFOg?view_as=subscri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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