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판 흔들기일까?
출판사에 십여 년 있으면서 몇 차례의 조직개편을 경험했다. 사원일 때는 잘릴 처지는 아닌 터라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숨죽여 지켜보는 입장이었다면, 이번 조직개편은 그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내 의지를 표명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 거 같다.
과장 6년차, 많은 회사에서 원하는 경력직 직원이지만 위로 올라가기엔 바늘구멍이고 현상태에 만족하기에는 돌파구가 필요한, 어쩌면 조직개편에서 꽤나 불편한 존재일는지도 모르겠다.
지켜본 바, 조직개편은 대개 헤드의 교체와 맞물려 진행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류의 조직개편을 판 흔들기로 분류하곤 한다. 헤드는 기존 조직을 자신의 조직으로 세팅하기 위해 다각도로 바둑돌 옮기기를 하는데, 이러한 조직개편이 크게 혁신적인 성장으로 증명된 경우는 사실 없었던 거 같다. (있을 수도 있겠지만 못 봤네요, 아직까지)
조직은 그 나름의 생리대로 흐르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고유한 생명력으로 적당히 알아서 굴러가는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직은 스타가 없어도 돌아가고, 평균치들만 모여 있다 하더라도 만루홈런을 치기도 한다. 그 원리가 딱 어떤 이치다,리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누군가의 열심이 끊임없이 순환되는 생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해 우수한 직원이 절반 가까이가 퇴사해 절망적인 2020년을 맞했던 귀사가 작년과 비슷한 매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이러한 선순환 구조 덕분이었을 거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실패한 한 해는 아니었다. 떠난 사람들의 몫을 채우기 위해 모두 돌아가며 열심을 냈고 실패도 많이 했지만, 홈런도 치고, 안타도 치고, 도루도 성공했다. 따뜻한 연말을 맞이하나 했는데 함께 일했던 동료와 물리적인 안녕을 고하는 해체를 맞이하게 되었다.
팀원들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팀장이었던 나는 함께 일궜던 조직을 잃는 것이 조금은 아프다. 모두가 동일하게 개복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니, 이제 생각해야 할 것은 팀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되었다.
허무했다.
나는 나의 무엇을 주장해야 하며, 이전만큼 역동적인 직장생활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
그 방편으로 성과중심적인 공정한 평가를 하겠다는 청사진을 내세웠는데, 늘상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협상이 아닌 통보를 받아왔기 때문에 솔깃하지 않는다. 과거, 우리 팀이 100억을 넘게 해도, “본부 평가가 c라 3% 인상입니다. 사인하세요” 라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 부지기수.
참, 1.6% 인상도 있었다. (그해 8만부 도서를 출간했음에도)
적어도 성과중심의 연봉 협상을 카드로 내세웠다면 어느 정도로 획기적인 인상율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이 새로운 인사팀은 과연 신임할 만한지.
출판사라는 것이 사업구조상 그 만으로 매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기 어렵다. 그 말은 무턱대고 성과가 좋다고 높은 인상률을 제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해 잘했다고 그 친구가 매해 초대박 베스트셀러를 기획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고 성과가 낮은 해에 연봉을 깎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나. 즉 예상 가능한 수치로 오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전망해볼 수 있다. (나는)
성과가 좋으면 부서장보다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이것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부서장의 연봉도 큰 차이가 나지 않을 테니. 그러니 그 얘기가 희망적인 얘기로 들릴 리가 없었다.
내가 너무 복잡한 것인가
너무 과몰입 중인가
또 한 차례 불어오는 조직개편을 바라보며
여러 생각이 드는데
그 다음에 맞이할 조직개편에서는 살아남을 것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되지는 않을는지
먼산을 바라보게 된다.
*출판사 편집자로 종종 글을 쓰고 왕왕 영상을 편집합니다. 좋아하는 책과 책을 만드는 일상, 암투병기(1기라 심각하지는 않은), 반려견과의 1인1견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