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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Mar 05. 2020

사랑의 기쁨과 슬픔 : 상실을 견디는 힘

1월의 글,  <상실>에 대하여

가을을 싫어했다. 온 세상에 생명력이 일렁이는 여름을 유달리 좋아하는 탓에 그 계절의 끝을 상기시키는 특유의 서늘한 기운과 하루가 다르게 푸른빛을 잃어가는 풍경이 못내 서글프게 느껴지곤 했다. 그러던 지난해 어느 가을날,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여 집으로 천천히 돌아오는 길이었다. 선명하게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울긋불긋 물든 가로수를 따라 발아래 가득 쌓인 낙엽을 천천히 밟고 있었다. 그때 어째서인지 처음으로 이 가을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생각의 변화는 지난여름, 고양이 두 마리가 내 삶에 우연히 찾아온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의 매일은 나와 연결된 작은 생명체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으로 전에 없이 충만해져 있었다. 매번 곤욕스럽게 겪어내던 계절의 변화에 전보다 무감해졌고, 우리가 함께하는 평범한 매일이 소중하기만 했다. 하루는 집 근처 도로에서 아주 예쁘게 물든 낙엽 두 개를 고르고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여름에 집으로 들인 아이들은 가을의 길거리를 밟아본 적이 없었을 터였다. 가을볕에 곱게 물든, 가을 냄새가 밴 낙엽을 작은 코끝에 가져다 대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킁킁 냄새를 맡을 동그란 얼굴들을 떠올렸다.


*


평소처럼 팔로우하던 어느 집사분의 인스타 피드를 훑었다. 종종 안부를 확인하던 고양이의 사진을 한데 모은 동영상 아래로 ‘많은 분이 보내주신 따뜻한 위로의 댓글에 감사한다’는 간결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머릿속에서 오류라도 난 듯 그 말을 여러 번 읽었다. 며칠 전 올라왔던 글이 고양이의 죽음을 의미하고 있음을 몰랐다. 에둘러 말한 내용의 행간을, 그 사이에 함축된 수많은 감정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오래도록 병을 앓던 어린 고양이. 마지막 며칠간은 그토록 먹기 싫어했던 쓴 약도, 아픈 주사도 없이, 반려인의 곁에서 원하는 만큼 편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온몸을 감싼 채 부풀어 올랐고,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통화를 누르고 대답을 하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의 고양이도 아닐진대, 왜 그렇게 내 일이라도 되는 양 슬퍼했는지 모를 일이다. 사실은 알고 있다. 그 견딜 수 없이 괴롭고 서글픈 일이 언젠가 내게도 찾아올, 예정된 미래이기 때문이다.


사노 요코의 동화책 『100만 번 산 고양이』는 100만 번이나 환생하며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자랑하던 얼룩 고양이가 하얀 고양이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는 슬픔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너무나 소중했던 하얀 고양이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졌을 때, 백만 년을 반복해 되살아나던 고양이는 유구한 삶의 반복을 스스로 멈춘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고, 또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백만 번이나 엉엉 울다가 어느 순간 그 옆에서 더 이상 깨어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두고 이슬아 작가는 서평집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에서 이런 말을 한다. 


“처음으로 생이 소중해봐서. 나만큼이나 소중한 남을 만나 봐서. 그런 건 쉽게 반복할 수 없다는 걸 고양이는 안 건지도 몰라. 너무 좋았고 너무 아팠기 때문에 차마 두 번은 못 한 걸지도 몰라. 하지만 나라면 바로 그 이유로 다시 반복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어. 다 끝난 다음에도 ‘한 번 더’를 외치게 되는 생과 사랑 말이야.”


고양이의 생은 인간의 생에 비해 짧디 짧고, 상실로 인한 고통은 언제나 그 뒤에 남겨질 내 몫일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내 나약한 마음은 손쓸 새 없이 무너져 버린다. 까맣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조용히 응시하는 작은 생명체와 가만히 눈을 맞추며, 부드러운 털을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귓가에서 골골거리는 소리를 소중히 귀에 담으며, 이 작고 따뜻한 생명체를 너무나도 사랑하여 나는 얼마나 행복하고 또한 슬픈지, 그리고 이 세상에 감사한지를 생각한다. 아득히 먼 상실의 순간. 그러나 내게 예견된 미래를 알고도 나는 언젠가 또 다른 길 위의 생명에게 감히 손을 내밀 테다. 나의 소중한 반려묘들이 그러하듯 한 생명이 잠시나마 내 곁에서 배를 곯지 않고, 조금 더 따뜻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내가 겪어내야 할 상실의 고통쯤은 그리 별것 아니다. 그보다 더욱 큰 무언가, 그건 그들이 내게 선물처럼 선사한 생과 사랑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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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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