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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가 사람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사람이 진짜일까?

by 혜운

수치심과 죄책감이 가장 수준이 낮은 정신적 수준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에너지가 있는데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에너지는 낮다는 말이 된다. 매일 그런 감정에 눌려서 기를 못 펴고 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너무 자책하면서 살지 말라는 충고일 것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기를 펴고 살라는 말로 해석된다.


다양한 이유로 사람은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낀다. 외부적인 요인도 있고 자기 스스로 느끼는 내면적인 요인도 작용할 터인데, 외부적인 요인이야 무시하거나 없애면 그만이지만 내부적인 요인이 문제다.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끼면 원인을 찾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면적인 요인으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때로 제대로 인간이 되는 데 도움이 된다. 남이 보지 않을 때도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라는 신독이 그렇고, 유교에서 강조하는 4단 중에 수오지심(羞惡之心)이 그렇다. 어쩌면 혼란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자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최종 방법은 내면에서 나올 것이다. 그러고 보면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에너지가 낮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검열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면 무척 의지가 강한 사람일 것이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고 경계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수치심과 죄책감을 더 많이 느끼지 않을까?


지위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완장을 차면 사람이 달라지니 말이다. 공식적인 직함이 주는 압박은 사람을 스스로 달라지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장세동은 경호실장으로 임명된 후 배탈이 나서 임무에 제한이 될까 봐 식사량까지 줄였고, 술담배는 물론 좋아하던 골프까지 끊었다고 한다. 이것은 물론 극단적인 예이지만 소임에 따라서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것 같다. 지위는 그래서 기를 북돋는다. 어리바리한 사람도 뭔가 맡으면 똑똑해 보이고, 마트에서 만난 후줄근한 동네 아저씨가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겸손한 사람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나쁜 사람은 없지만 집단의 이름으로는 인간으로서 차마 하지 못할 일을 서슴없이 한다는 주장을 한 사람이 있다. 인간은 도덕적일지 모르지만 사회는 비도덕적일 수 있다는 책을 쓴 사람인데 사회라는 이름으로 자행했던 전쟁과 같은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들을 비판하려고 한 것 같다. 사회와 개인을 구분할 수 있으면 사회의 비도덕함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받지 않을까? 다시 생각하면 사회라는 것은 개인의 이기심을 표현하고 분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하지 못할 일을 사회라는 가면을 쓰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 모습이 진짜일까?


어느 유명 연예인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할 말을 하고 사는 것이 진보이고 편하게 강자 편에 서면 보수"라고 했다. "돈보다 생명이 먼저라고 생각하면 좌파"라는 말도 했다. 이 연예인이야말로 개인과 사회의 다름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할 말은 할 수 있는 사회가 자유로운 사회이지 성향에 따라서 할 수 있으면 그게 자유로운 사회일 수 있나? 다만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전제가 될 것이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랄 수 있는 의사, 간호사, 소방관, 경찰관들 중에 생명보다 돈이 먼저라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일까? 개인적 가치를 사회적 가치와 혼동하면 사회적 모습이 나의 진짜 모습이라 착각하게 된다. 목욕탕에서도 왕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위가 만든 사람은 그래서 진정한 사람이 아니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많이 느끼면 기가 쇠하겠지만 적당히 느끼면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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