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가능성을 높이는 판 엎기 전략
화가 나면 판을 엎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일명 분조장(분노 조절 장애)의 성향이 있다고 하기도 한다. 분조장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아예 판을 엎어버린다. 예를 들면 고스톱을 하다가 담요를 엎어버린다거나, 훌라나 포커를 치다가 판돈과 카드판을 엎어버리는 것이다. 판을 엎는 행위는 엄청 욕을 먹을 일이다. 속임수를 쓴 것은 판이라는 체계는 그냥 유지되는 반면 엎는 행위는 체계 자체가 어그러진다. 그래서 그 판에서 돈을 따고 있던 사람은 판을 엎은 사람이 그렇게 미울 수 없을 것이다.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판을 엎었다고 해도 생각보다 욕을 먹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돈을 따는 사람은 한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다. 따는 사람은 한 명인데 잃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내심 엎었으면 하는 사람이 대다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판을 엎는 사람이 유리한 점이다. 그걸 계산했기에 분명 비도덕적이고 비합리적인 일이긴 하지만 실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생각대로 잘 안된다거나 장애에 부딪히면 판을 엎어버린다. 지금 구축되어 있는 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엎어 버린다. 사실 전략 중에 가장 최고의 전략이 판을 엎어 버리는 것이다. 현재의 체계가 지속되면 내가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런 암울한 상황을 유지하면서 패배자가 되느니 모험을 하는 것이다. 가만 있어도 패배자가 되는데 기왕이면 모험을 하는 편이 낫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니까 말이다. 판을 엎어 놓으면 다시 판이 구성될 것이고 그때 내 입김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현재의 구도를 해체하고 다시 구성함으로써 내가 이길 수 없었던 환경을 내가 이길 가능성이 많아지는 환경으로 전환하는 것이 판을 엎는 것의 목적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매우 영리한 전략이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가장 큰 판은 국가일 것이다.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국가의 주권이 거의 신성불가침 수준으로 고양됐기에 사람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체제가 국가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국가를 운영하는 원칙은 법이다. 헌법을 시작으로 법률, 조례 등 국가와 국가 조직을 운영하는 규칙이 있는 한편 조그만 조직이라면 규정을 가지고 조직을 운영한다. 이런 법을 어기면 처벌이 따른다. 원래 법의 가장 큰 목적은 공정한 조직,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함인데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법도 복잡해졌다. 공정함을 추구하려는 법이 사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어 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곰곰 생각해 보면 법이나 규정은 사실 조직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수단일 뿐이다. 조직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구현하는 방안의 하나일 뿐인데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가만 놔둬도 잘 운영되는 조직이면 법이 필요없다.
사람 위에 법이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의 삶을 위해 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으면 삶이 삭막해진다. 아닌 것이 분명한데도 법 때문에 참아야 한다는 사실은 사람을 우울하게 한다.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를 보면 법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한문철 변호사는 패널들에게 과실 비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묻는다. 감정적으로 봤을 때 100대 0인데 법은 그렇지 않을 경우가 많다. 아무 생각 없이 사고를 당한 피해자만 억울할 뿐이다. 사고를 낸 사람은 법 때문에 다소 부담이 줄어서 다행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라고 법이 있는데 법 때문에 억울한 사람도 생긴다. 아이러니하다. 전략과 전술의 전도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 잘 사는 사회를 만들려는 전략을 구현하는 전술이 법인데 전략과 전술이 전도돼서 그렇다.
더 공부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