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만드는 것보다 더 오만한 것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 간다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오만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길이 없었는데 자기가 처음으로 그 길로 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이유로든 그 사람이 환경이 어려워서 사회적으로 통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경로를 거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이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길을 만들어서 간다는 말에는 ‘나는 성공했다’는 자부심도 들어가 있다. 그런데 길이란 것은 사실 내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목적지에 가야 한다는 것이 길의 존재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길이 없어도 목적지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목적지만 인식하고 있다면 나는 길이든 아니든 갈 수 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일이 생기는데 길이 있어야만 간다고 할 수 있나. 길이 나 있어도 가지 못할 수도 있는데, 길이 없다고 못 가는 것도 아닐 터이다. 그래서 갈 수 있다고 해서 길인 것도 아니고, 못 간다고 해서 길이 아닌 것도 아니다. 내 발이 밟을 수 있어야만 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형체가 없는 무형의 길도 있다. 길은 그 길로 가려는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 내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고려를 뭉뚱그려 표현한다면 ‘통하면’ 길이 될 것이다. 즉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면 그게 길인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길이 아닐 수도 있다. 길이 아닌 것은 아니고.
길을 만들어서 간다는 말은 그래서 오만하다. 내가 만든 길을 따르라는 무언의 권유가 있고, 그런 길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인데, 그게 길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오만함의 발로이다. 그게 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나. 그 길을 따르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만약 그게 길이라면 그걸 따르면 성공한다는 말인데.
나는 길을 만들어서 갔다는 사람보다 더 오만하다. 그런 사람을 오만하다고 하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