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편한 소리 하고 있네
업무적인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지 가늠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같은 업무라고 해도 그 업무를 추진하는 조직에 따라서 어떤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것인지 달라질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사장 또는 그 업무의 성패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일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에 들게 일을 해야 실력이 있는 것이고 잘한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내 상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고 구미에 맞추는가이다. 업무 실력이라는 게 점수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의 느낌과 평판이 척도가 될 경우가 많다. 보통 상사의 멘트가 이런 척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긴 한다.
조직의 원리는 보통 이렇다. 사장 혼자 일을 못 하니 여러 부서로 나눠서 일을 분배한다. 큰 조직을 작은 조직으로 분할해서 운영하는데, 업무의 특성에 따라서 작은 조직은 보다 큰 조직에 속한다. 조직도 중간에 회사나 조직 전체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책임지는 부서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런 부서는 보통 핵심 부서로 꼽힌다. 생산적이진 않지만 사장이나 조직 장의 의도를 잘 알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다른 부서를 ‘쪼아대는’ 역할을 맡고 있으니까. 더 큰 조직의 일부로서 성과를 내어 조직의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작은 조직의 장은 조직원의 행복감을 유지해 주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일을 할 것이니까.
언제부터인가 워라밸이 삶의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인데, 듣기에 아주 좋다. 일하는 만큼 휴식도 취하고, 직장에서 고생하는 만큼 내 생활에서도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누가 반대하랴. 그래서 조직의 관리자쯤 되면 조직원들의 워라밸을 신경 써야 한다. 원치 않는 야근을 하는 사람은 없는지, 조직의 업무 체계가 불합리해서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지, 부당한 처우를 당하는 사람은 없는지 꼼꼼히 챙겨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조직에서 더 오래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할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해 보자. 워라밸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 말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경험했을 대학 입시가 가장 좋은 예다. 입시는 ‘지옥’이라고 할 정도로 힘들다고 표현한다. 4당 5 락이라고 하면서 잠자는 시간까지 제한하며 입시에 몰입하도록 다그침을 당하던 우리였다. 우리는 이미 학창 시절에 워라밸이라는 것이 입시에서는 있을 수 없음을 경험했다. 적당히 공부해서는 만족할만한 성적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옥’ 생활에서도 지옥이라고 느끼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다. 공부를 아주 잘하거나 공부를 아주 못하는 친구들이었다. 아주 잘하는 친구는 모든 게 쉬웠다. 잠깐 책을 보면 되고, 노력이라고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그다지 없었다. 공부를 아주 못 하는 친구는 보통 대학 진학을 포기한 상태였기에 공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게 있다. 대학을 가려는 친구는 모두 입시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친구를 보면서 공부 안 해도 좋겠다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과연 스트레스가 없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대학 가려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었을 뿐이지 다른 스트레스는 있었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고, 다른 친구들과 다른 나름의 인생을 설계하는 데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나이 들어 그때를 회상해 보면 그런 말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입시가 이럴진대 회사의 업무는 어떨까. 왜 입사했는지를 생각한다면 워라밸을 보장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유치한 일이다. 돈을 많이 벌려는 사람은 워라밸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적당히 돈을 받을 사람은 워라밸이 필요할 것이므로. 워라밸은 누가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아서 누리는 것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워라밸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이러한 것이 워라밸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투정 부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뭘 추구하느냐에 따라서 워라밸을 인식하는 정도가 다를 것이니까 말이다.
이제 워라밸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