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면 뭐가 달라질까?
카카오톡 프로필에 은퇴날짜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려주는 D데이 기능을 넣었다. 천 일이 훨씬 넘게 남았을 때 만들면서 천 일이 깨지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를 상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막상 천 일이 깨졌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평온하다. 아무 일도 없다.
생각해 보니 그 동안 나는 많은 은퇴를 했다. 학교도 국민학교를 시작으로 대학교까지, 대학원까지 은퇴했다. 경력도 은퇴한 적이 많다. 직업을 바꾼 건 아니지만 똑같은 일이나 직책을 두 번 한 적은 없으니 이것도 은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전에는 은퇴를 직임(職任)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내 정의는 사전적인 정의와는 맞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사전의 정의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은(隱)은 숨는다는 뜻이고 퇴(退)는 물러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은퇴는 옛날에 관직에서 물러나면 초야에 묻혀 지낼 때나 맞는 말이다. 은퇴라는 말과 어울리는 생활을 하려면 TV프로그램처럼 '자연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아무리 늙어도 사회 활동을 안 할 수 없으니 은퇴라는 말은 맞지 않다. 그리고 소위 은퇴했다는 사람들이 모두 한가하게 지내지는 않는다. 과거 경험을 살리든 새로운 일을 하든 활발하게 산다. 사실 요즘은 은퇴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일을 아예 안하고 놀면 몰라도.
은퇴했던 경험이 이렇게 많은데 천 일 후 '진짜' 은퇴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가장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수입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보다 수입이 줄 것은 확실하다. 대신 젊었을 때처럼 입신이나 양명을 위해 남 눈치볼 일은 없을 것이다. 좀 우아하게 생활한다면 노련한 조정자의 역할은 할 수 있을까? <인턴>이란 영화의 로버트 드니로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