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하고 싶은 일
은퇴하는 순간 제2의 인생의 시작이라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시작해야 할지 사실 막막하다. 남이 이러저러한 곳에 취직해서 괜찮은 연봉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부럽고, 나는 왜 미리 준비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한다. 이런저런 상념을 다 제쳐두고 나의 인생 2막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가 봐야 알 일이라고 생각하면 편안하다.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을 치랴.
은퇴를 어떤 사람은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영어로 retire가 은퇴인데 타이어(tire)를 바꿔(re) 끼우듯이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니 1막에서 하지 못했던 것을 해 봐야겠다는 의지가 피어난다. 하지 못했던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 덕분에 이 나이까지 오면서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나이가 좀 들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것은 나를 보다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의 약점을 인정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받던 스트레스를 안 받게 됐다.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이다.
기왕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거라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나이 제한이 없고 지속성이 있는 일이라면 좋을 것 같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면 금상첨화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지속성이 있는 일이면 그걸 선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평균 수명이 늘어났다는데, 80세라고 쳐도 60세에 은퇴하는 사람들은 2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마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내린 결론은 육체노동보다는 정신노동을 하는 직종이 나을 것 같다는 것이다. 또 나를 위한 일보다는 봉사에 가까운 일이 괜찮을 것 같다는 것, 보수를 따지기보다는 나를 받아주는 것에 더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내가 잘 보여야 할 대상이 있거나 동일한 일을 하는 타인과 비교의 대상이 되는 일이다.
은퇴를 맞는 운동선수는 은퇴 경기를 한다. 군인은 전역식을, 공직자들은 퇴임식을 한다. 은퇴를 기리는 세리모니다. 이런 행사는 그가 재직하는 동안 쏟았던 정성과 노력을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격려하고 축하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행사는 자축보다는 남으로부터 축하를 받는 의미가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구성원들에게 열심히 하라는 독려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은퇴하는 모든 사람이 화려한 은퇴식을 치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화려한 행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영향력이 있고, 인기가 있고, 속한 집단에 많이 기여한 사람일 것이다.
은퇴 후의 삶이 설레고 기다려진다면 화려한 은퇴식은 의미 없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한다. 잘 준비된 은퇴라면 인생 1막의 결산이 잘 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자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더 탄탄해진 모습으로 2막을 맞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