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ger's nest : 호랑이의 보디가드
매년 겨울(1월~2월) ‘오~히말라야’라는 이름으로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초대하여 히말라야 네팔(가끔 부탄)을 여행한 횟수가 17번을 넘어가고 있다. 올해는 ‘사람, 장소, 환대 그리고 정신과 몸의 감각’을 조금 더 채워갈 수 있는 여행이었고 그 여운은 여전히 나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약 한달 동안 히말라야로 연결된 부탄과 네팔을 여행했던 기억들 그리고 다시 4월에 떠난 안나푸르나 묵디나트(Muktinath)로의 여행 속 찰나의 기억들이 조금씩 잊혀질 때 쯤 한 편의 영화가 소중한 기억들을 소집(召集 한다.
히말라야와 관련한 이야기 또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빠뜨리지 않고 보고 있지만 이 영화처럼 아주 작은 기억의 단상들을 종합선물 세트처럼 꺼내주는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안나푸르나 좀솜(Jomsom)에서 묵디나트를 왕복하는 걷기 여행을 아주 세심하고 정겹게 들춰주었던 영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과 같은 기억의 선물이다. 영화의 흐름은 특별하지 않은 모험 드라마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 장소와 향기에 대한 진한 경험과 기억의 감각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다시 그곳으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감독과 배우 그리고 풍경의 오묘한 결합이다.
히말라야의 사람과 자연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이탈리아에서 제작했고 감독도 이탈리아 사람이다. 브란도 퀼리치(Brando Quilici) 감독은 독립 영화제작자 겸 감독으로 캐나다 북극의 빙원을 배경으로 한 가족 액션 어드벤처 장편 영화 ‘The Journey Home’과 같은 자연과 모험의 영화를 주로 만든다. 그리고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의 국적 또는 재미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발마니’는 이미 영화 ‘라이언’으로 유명한 인도출신의 아역배우이고, 보육원 원장 ‘한나’역은 이탈리아 출신의 배우이다. 영화의 배경인 네팔출신의 배우로는 보육원 여교사 ‘이드하’, 주인공 발마니의 친구로 등장하는 ‘마다브’와 그의 아버지 등이고 악역대장으로 등장하는 ‘삼차이’는 한국출신의 배우이다. 이렇게 이탈리아, 인도, 네팔(구릉족, 타루족, 세르파 등), 중국, 한국 등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의 등장은 마치 오랫동안 수많은 인종과 문화를 품어온 희말라야와 닮아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소 역시 거대하고 신성한 히말라야로 이동했던 종교와 정신의 여행경로와 닮아있다. 네팔의 남부 평야 속 정글이 있는 치트완에서 시작해서 중부지역에 위치한 수도 카트만두와 고대도시 박다푸르, 슈얌부나트(원숭이 사원), 보우더나트 그리고 북동쪽 히말라야 은둔의 왕국이라 호명되는 부탄의 호랑이 사원(tiger nest)까지 이어진다.
네팔과 부탄 모두를 여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신나는 영화 속 여행이 가능하다.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만 있을 것 같은 네팔에는 수많은 호수와 강이 흐르는 물의 나라이기도 하고, 네팔의 남쪽에는 끝없는 평야지대와 아직도 호랑이와 코뿔소가 살아가는 정글이 존재한다. 이 영화의 시작도 호랑이, 코뿔소, 코끼리가 살아가는 네팔의 남부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네팔 역사와 문화의 중심인 카트만두와 박다푸르는 영화 속 이야기의 근원이기도하다. 발마니의 아픈 기억 속에 등장하는 지진 장면은 허구가 아니다. 실제 2015년 4월 네팔의 대지진 때 카트만두와 박다푸르에는 적지 않은 피해가 있었고 박다푸르의 고대 유적 중에는 아직도 복구작업을 하고 있는 곳이 있다. 이외 영화 속에서 짧게 스쳐가는 듯 등장하는 슈얌부나트(원숭이 사원)와 보우더나트는 네팔의 뿌리와 정신적 토대가 되는 소중한 장소이며, 히말라야가 잉태한 티베트불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고대의 향기가 살아있는 박다푸르의 복잡한 골목과 오래된 집들은 나쁜 놈들에게 다시 잡혀간 호랑이(묵크티)를 친구들과 함께 구출하는 장소로, 발마니와 한나가 다시 조우하는 장소로 등장한다. 보육원 원장 한나와 보육원 요리사 제난이 발마니를 찾기위해 차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보우더나트는 영화 속 여행의 종착지인 타이거스 네트스(탁상사원, 호랑이둥지)와 히말라야 그리고 불교의 신화적 이야기가 연결된다. 두 사원의 탄생 배경은 8세기 경 인도에서 네팔 히말라야를 거쳐 티베트와 부탄으로 불교를 전한 성자 ‘파드마삼바바’의 신화와 연결되고 있다. 영화 초반과 마지막 즈음에 볼 수 있는 탕가(Thanka,티베트 불교회화)의 주인공이 바로 ‘파다마삼바바’이다.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발마니와 묵크티의 여정은 히말라야의 길 그리고 신화와 정신의 여정과 다르지 않다.
새끼 호랑이의 이름이 묵크티인 것도 희말라야처럼 상상해볼 수 있다.
묵크티(mukti)는 고대언어인 산스크리트어인 ‘Moksa'의 또 다른 표현이다.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해방, 열반을 의미한다. 히말라야 네팔 서북쪽에 있는 묵디나트(Muktinath)사원은 힌두교와 불교 최고의 성지 중에 한 곳이며, 호랑이 묵크티가 마지막 해방을 얻은 탁상사원(Tiger's nest) 역시 부탄불교의 성지이다. 호랑이 묵크티가 해방을 얻은 곳은 히말라야였고, 발마니가 자신만의 또 다른 삶을 얻은 곳도 히말라야였음을 내 맘데 상상해본다.
발마니와 묵크티는 겨울이면 티베트에서 히말라야 넘어 부탄(포브지카 계곡)으로 날아오는 ‘검은목 두루미’의 여정을 따라간다. 히말라야에 기대어 살아가는 네팔과 부탄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이 영화는 히말라야를 여행하는 영화로 다가온다. 올해 2월 부탄 포브지카 계곡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검은목 두루미와 만남은 우연이 아님을 다시 확인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