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행거 위에 걸린 건 외투일까, 내 자존감일까?
우리 사무실 입구에는 작지만
무시 못할 의미 있는 공간,
긴 행거가 하나 놓여 있다.
가을쯤이 되면, 외투를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아침마다 그 행거에
외투를 걸기 시작한다.
그날도 나는 늘 하던 대로
출근 후 내 외투를 행거에 걸었다.
그런데 문득 다른 사람들의 외투가 눈에 들어왔다.
"어? 이건 막스마라네. 저건 셀린느, 그리고 저건 버버리."
그 상표가 보이는 순간,
옷만 보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새롭게 보인다.
평소 잘 알지 못했던 동료가 갑자기 세련되고 여유로운 사람처럼 느껴진다.
마치 그 외투가 그 사람을 설명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이름만 들어도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외투들.
그 틈에서, SPA 브랜드 세일 코너에서 49,900원에 득템한 내 코트가
초라하고 가벼워 보였다.
거울 앞에서 보았을 땐 핏도 괜찮았고,
단추 디테일도 나름 귀여웠다.
그런데 행거에 걸자마자,
그 외투는 더 이상 '옷'이 아니라
누군가와 비교될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브랜드는 원래 물건의 품질과 가치를
나타내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브랜드는 그 물건을 가진 사람의 '가치'까지 대변하는 듯한 존재가 됐다.
버버리 코트를 걸친 사람은
성공한 커리어우먼처럼 보이고,
막스마라 코트를 가진 사람은
세련된 고급취향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
내 저렴한 외투는,
어쩐지 '노력 중인 누군가'를 상징하는 것만 같다.
코트를 벗어 행거에 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계산이 시작된다.
'이 상표가 보이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 그냥 의자에 걸어둘까?'
나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거다.
"왜 우리는 행거 위의 상표에 그렇게 흔들릴까?"
사무실 외투 행거 앞에서 시작된 작은 열등감은 나도 모르게 커졌다.
"내 옷의 상표가 남들 눈에 띄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자,
그 뒤로는 슬쩍 행거의 안쪽에 외투를 걸어두거나,
아예 의자에 걸쳐두는 방식으로
나만의 '방어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또다시 머릿속을 지배하는 고민이 생긴다.
"당근마켓에서 버버리를 중고로 사볼까? 아니면 코트까지는 어려워도 목도리라도?"
이런 고민은 매일 반복됐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아울렛을 몇 번씩 돌아다닌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내 현실적인 목소리가 나를 붙잡는다.
"분수에 맞게 살자.
그 돈으로 대출이나 갚아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나도 한 번쯤은 명품 외투를 걸쳐보고 싶다'는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사실, 코트를 입고 있을 땐
누구도 내 상표를 보지 않는다.
내 모습과 태도, 그리고 내가 하는 일들이
나를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코트를 벗어 행거에 거는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브랜드 상표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나, 괜찮아 보이지 않아?"
혹은 "너도 이 정도는 입어야지."
이런 생각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외투를 입었을 때 느껴지는 당당함은 분명 힘이 된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건, 그 브랜드가 나의 가치를 대신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내가 아닌 외투가 나를 설명하도록 허락하는 순간, 나는 내 자신을 축소시키고 만다.
"왜 우리는 이렇게 브랜드에 민감할까?"
솔직히 말해, 좋은 브랜드의 옷은 분명 이유가 있다.
디자인, 품질, 그리고 입었을 때의 자신감까지.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런 질문도 떠오른다.
"나는 진짜 그 옷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단지 남들의 시선이 두려운 걸까?"
행거 위 다른 외투들을 보며 느낀 위축감은, 어쩌면 단순히 패션에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브랜드가 내 자존감을 평가하고, 내 위치를 확인하는 잣대처럼 느껴지는 게 문제다.
물론 언젠가 나도 막스마라 코트를 걸칠 날이 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내 옷을 스스로 선택한 이유를 사랑하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외투는 내 분수 안에서 합리적인 소비를 한 결과다.
이것이 내가 당당해지는 첫걸음이다.
사무실 행거 속 외투들이 여전히 눈에 띄더라도, 그저 감탄하고 말기로 했다.
내 옷이 작아 보였던 건 브랜드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나를 작게 느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런 고민조차도 하나의 과정이라 여기며 지나가기로 한다.
그럼에도 행거 앞에 설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