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해야 했던 피해자가, 오히려 피고가 되는 현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피해자가
참고 견디며 살아온 시간을,
이제 '침묵'이라 부르려 합니다.
세 아이의 양육비와 생활비조차 받지 못하고
복지혜택으로 살아야 했던 별거 14년,
침묵으로 견뎌낸 시간을
"혼자서 14년을 살았으면 그럭저럭 살 만했던 것 아닌가요?"
1심 재판에서 여성 판사가 내게 던진 말이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존엄마저 부정단한 순간이었다.
살기 위해 견뎌낸 시간을
그 판사의 말 한마디에 지난 30년이 지워졌다.
'살 만했으니까 살아온 거'라며 되묻는 이 현실에서
지금껏 내가 흘린 눈물은
엄마라는 이유로 참아야 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상처를 숨기며 살아야 했다.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법은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외면했다.
피해를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면
마치 그동안 버텨온 삶이 잘못된 선택인 것처럼 몰리는 현실이었다.
경찰이 동행한 긴급피난처 입소 확인서까지 제출했지만,
1심 판결문은
"가혹할 정도의 폭행으로 보기 어렵다"며 가정폭력을 외면했다.
피해자인 내가 오히려 피고가 되어
말도 안 되는 현실과 싸워야 했던 것이,
내가 살아야 했던 진짜 이야기다.
그렇게 나는 1심에서 패소했다.
나는, 가정폭력을 견디며 살았다.
참아야 했고, 그래야만 했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처음엔 그냥 버텨보자고 했다.
세 아이를 안고, 차가운 욕실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손이 닿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게 매일 밤이었고, 몇 년이었다.
도망치듯 집을 나서던 날,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고함, 욕설, 위협,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울음.
나는 아이들을 품에 안고, 한밤중에 뛰쳐나왔다.
추운 겨울, 얇은 담요가 전부였던 차 안에서 어린 세 아이를 품에 안고 밤을 지새웠다.
내 심장이 요동치듯 온몸이 떨렸다.
차창밖으로 눈 덮인 길거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이 아이들이 나처럼 무기력하게 길들여질까 봐.
긴 시간 동안, 나는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았다.
아내로서 존재하지 않은 존중받지 못한 채,
단지 엄마로서의 책임은, 나에게만 쏟아졌다.
남편은 가정보다 가족을 우선시하는 원가족중심의 생활로 가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로 인해, 경제적·정서적으로 양육과 보호책임을 회피했다.
평일에는 형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술자리가 먼저였고,
주말마다 시댁 식구들의 일을 나보다, 아이들보다 먼저 챙겼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외톨이가 되어갔다.
세 아이의 목욕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엄마가 아들 등을 밀어주는 건 세상의 당연한 일인 줄 알았고,
어느새 아들은 그게 세상의 방식인 줄 알고.
엄마보다 커진 등을 밀어달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연극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어린 세 아이를 남겨두고 집을 떠났다.
“이제 네가 먹을 건 네가 벌어서 먹고살아라. 이 집 네 해.”
월급통장과 공인인증서를 챙겨 나갔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과 버려졌다.
통장잔액은 0원,
냉동실에 있는 쌀가루에 죽을 쑤어 세 아이의 끼니를 해결했고,
집은 늘 남편이 없는 것에 익숙했다.
그 적막함 속엔 세 아이가 느끼는 불안과 외로움이 있었고
아이들 앞에서 아빠를 나쁘게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아빠는 바빠서 못 온 거래.” “출장이래.”
그 말들을 반복하며 아빠의 빈자리를 설명하는 역할을 스스로 떠맡았다.
딸들과는 눈빛만으로도 그 의미를 나눌 수 있었지만,
세 살 아들만큼은 몰랐으면 했다.
어린 아들만큼은 상처 없이 크길 바랐다.
그 한마디를 꺼내야 했던 순간,
그렇게 1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아들은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슬슬 아빠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이 가장 두려웠다.
말하지 못했던 단 한마디,
“엄마와 아빠는.... 지금 별거 중이야.”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내 입으로 내 가정을 무너뜨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조용히 말했다.
“나, 진작에 알고 있었어.”.... 눈가를 훔치는 아들의 손,
그리고 말끝을 삼키는 목소리.
그 순간, 내가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아빠 없는 하늘아래,
아빠와 목욕탕 가는 친구들을 제일 부러워하던 아들은
지금도 목욕탕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수염이 자랐을 땐 유튜브를 보며 친구에게 면도하는 방법을 배웠고,
아빠가 해줘야 할 것들을 아들 스스로 배워야 했다.
그렇게 첫 수염을 정리했다.
아들의 등을 밀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엄마뿐이었기에 버텼던 것이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 모든 상황을 견디고 살아낸 것이다.
그런데 법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너무 늦게 도망쳤다”라고,
그런데도, 나는 말하지 못했다.
그 한마디를,
‘엄마라는 이유로 감당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