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길 줄 알았다, 열심히 살았으니까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나는,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결국 ‘피고’가 되어 법정에 서야 했다.
세상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했고,
법은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 법은 내게 정의가 아닌 ‘절차’를 요구했다.
126개의 증거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고 읽히지 않았다.
감정을 입증하라, 상처를 설명하라.
마치 나의 고통이 숫자나 서류로만 인정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맞았다.
그리고 참았다.
살기 위해 견뎠고, 아이들 때문에 침묵했다.
하지만 결국, 그 침묵은 ‘증거 없음’이 되었고
나는 오히려 방어해야 하는 자리에 내몰렸다.
그날, 법은 가해자의 말에 더 많은 기회를 주었고,
내 말은 조용히 묻혔다.
‘그 정도는 흔한 일’이라는 말,
‘가혹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판결.
가정폭력에도 심신미약이 적용되는 법.
나는 보호받기 위해 문을 두드렸지만,
그 문은 너무 차가웠고
법정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내가 아닌, 상대의 입장을 더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법은 내 편이 아니었다.
법은 정서도 맥락도 이해하지 못했고,
내가 얼마나 두려웠는지는 판결문 어디에도 쓰이지 않았다.
피해자는 가해자보다 더 많이 증명해야 하고,
더 많이 견뎌야 하며,
때로는 더 오래 살아남아야만 진실이 증명된다.
나는 피해자였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그저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그 모순 속에서 나는 또다시 무너졌다.
그렇게 나는,
정의가 아닌 절차만 남은 법정에서
또 한 번 침묵을 배웠다.